# 얼마 전 막을 내린 tvN 프로그램 ‘윤식당 2’의 한 장면이다. 식당을 찾은 라트비아 손님들은 메뉴를 주문할 때 ‘야채비빔밥’을 ‘베지터블 온리’로 요청했다. 그들은 야채비빔밥에 올리는 계란프라이도 빼달라고 주문할 정도로 엄격히 비건의 조건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윤식당’ 출연자들은 방송에서 “손님들의 70%가 채식주의자”라며 “확실히 해외에는 비건이 많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윤식당’에서 보여주듯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비건 열풍이 거세다. 서구지역에서 인류의 공존을 위해 다른 생물의 삶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동물·환경보호에서 시작한 ‘공존의 해법’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도 옮겨붙어 ‘채밍아웃(채식주의자임을 밝힘)’을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비건 라이프스타일도 확산되고 있다. 건강한 삶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데다 최근 동물복지·환경보호 같은 이타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소비로 이를 실천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서울 강남과 홍대 인근에 비건 식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으며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비건식빵·비건요거트·비건육개장 등 다양한 비건푸드 레시피가 쏟아지고 있다.
비건은 육류·유제품·어류도 섭취하지 않는 가장 엄격한 단계의 채식주의자로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생명을 먹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다이어트나 건강이 아니라 인간을 동물보다 상위에 두지 않겠다는 상호 배려와 존중의 의미가 강하다. 신상헌 계명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아직도 한국에서는 개고기 논쟁이 뜨겁지만 이미 서구에서는 인구의 10% 이상이 채식주의자”라며 “배려의 삶을 사는 이들은 어찌 보면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인 셈”이라고 말했다.
국제채식인연맹(IVU)에 따르면 전 세계 채식인구는 1억8,000명에 달하며 그 중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은 약 3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비건 인구는 약 50만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환경보호 차원의 의미보다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채식주의자는 물론 다이어트를 위해 비건의 세계로 입문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비건은 식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털옷도 채식처럼 비건 의상을 만들자는 ‘동물 착취 없는 패션 선언’에 구찌·아르마니·랄프로렌·휴고보스·자라·H&M 등 글로벌 브랜드가 일찌감치 동참했다. 가죽 대신 합성피혁·페이크퍼를 쓰는가 하면 구스·오리털을 대체할 인공소재인 ‘신슐레이트 소재’를 사용하는 기업이 늘었다.
초밥도 생선이 아닌 토마토초밥이 나오는가 하면 화장품 브랜드들도 동물성 재료가 없는 비건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영국 브랜드 러시는 제품의 85%를 비건화장품으로 채웠다. 사육동물의 복지와 지속 가능한 식량생산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온 닥터 브로너스는 비건을 지향하는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꼽힌다. 유한양행의 유아 스킨케어 브랜드 리틀마마는 비건 인증을 받은 스파워시·스파로션·스파오일을 밀고 있다. 쥬이오가닉은 국내 처음으로 비건 인증 ‘유기농 마스카라’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네덜란드 비건 화장품 ‘그린랜드’가 국내에 론칭했다.
직장인 이수현(32)씨는 “동물과 환경에 해를 끼치는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비건 소비에 동참했다”며 “하지만 비건 제품이 대중화되지 않은 까닭에 가격대가 높아 다른 소비를 줄이고 있다. 비건 소비자들이 늘어 다양한 제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