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박사가 대전 KAIST 연구실에서 제자들과 실험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권욱기자
세계 최고 대사공학 연구자인 이상엽(54)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과 특훈교수는 20~30대 못지않은 열정을 내뿜는다. 지난 1월 말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뒤에도 며칠을 빼고는 새벽에 출근해 오후8시 가까이에 퇴근하고 있다. 그의 한 제자는 “교수님은 주말도 없이 20여년을 우리 연구실에서 가장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교수는 아이디어 뱅크다. 전공인 생명공학 외에도 화학공학·신소재공학·화학·수학·공학을 융합해 인간과 사회, 과거·현재·미래와 연결해 다양한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 한다. 융합연구의 메카로 자리 잡은 KAIST 연구원의 원장을 두 번째 맡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교수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연구해왔는데 우수한 제자들이 없었으면 아마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100명이 넘는 석박사를 배출해 그중 대학 교수가 30명 이상이고 산업체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매년 업데이트된 미래 이력서를 받아요. 지금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가정하고 65세까지의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한 뒤 지도하죠.” 그 결과 기업에서 45세에 최연소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50세에 큰돈을 벌어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학생부터 교수가 돼 60세에 노벨상을 따겠다는 학생까지 아주 다양하다. 그중에는 교수가 꿈이라고 썼다가 너무 힘들어 그냥 취직하겠다는 제자가 3명 있었는데 이 교수에게 불호령을 받고 연구에 매진해 모두 교수가 되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이 힘든 과정을 거쳐 세계적 생명공학자로 거듭나는 것을 보면 아주 뿌듯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 교수는 어려서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이 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과학반에서 선배와 한 팀을 꾸려 과학경시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부모님의 격려를 많이 받으며 과학에 흥미를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LG화재해상보험(현 KB손해보험) CEO까지 지냈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신 분이죠. 밖에서는 힘드셨겠지만 집에서는 자상하게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셨어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제가 가장 존경합니다. 물론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의 사랑도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희생해 제 뒷바라지를 해주는 제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죠.”
대학 시절에는 1~2학년 때 실컷 놀다가 3~4학년에는 스케일이 큰 화학공장의 디자인과 운영 방식에 매료돼 공부에 매진했다고 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대학원에서는 그 당시 새로운 분야였던 생물화학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간중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힘든 적도 많았지만 새 아이디어를 자꾸 적용하다 보니 차별화된 연구가 가능했지요.” 이후 KAIST 교수가 돼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대사공학 분야에서 세계 1인자가 됐다.
그는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해 나름 이 분야에서 세계 선도그룹이 됐다”며 “이제는 제자들이 각계에서 훌륭하게 잘해주고 있어 부담이 조금 줄었다”고 흐뭇해했다. /대전=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