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 자유무역협상(FTA) 개정협상을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픽업트럭 관세 철폐기간을 연장한 데다 신약 가격을 높일 수 있는 방안까지 받아낸 만큼 만족스러워할 만했다. 함께 이뤄진 무역확장법 232조(모든 수입산 철강재에 25% 추가관세 부과) 면제 협상에서 한국을 빼줬지만 통상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개의치 않았을 거라고 본다. 쿼터제를 조건으로 내걸어 최근 3년 평균의 70% 수준으로 대미 철강 수출을 낮춰둔 터다.
무엇보다 미국은 이번 기회가 아니라도 한국 철강을 몰아낼 수 있었다. 미국은 특정 철강재를 골라잡아 매년 반덤핑 관세율을 재산정한다. 언제든 개별철강재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한국산 철강재를 미국 땅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점이 잘 잡힌 저격총까지 손에 쥐고 있다. 불리한 가용 정보조항(AFA)이 대표적이다. AFA는 자료제출이 미비하다고 판단하면 상무부가 자의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조항이다. 문제는 자료제출의 적합성을 상무부가 판단한다는 점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만 페이지에 이르는 자료를 일주일 안에 제출하라고 한다”며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곧바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한국 철강을 융단폭격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는 거둬들였지만 언제든 뒤돌아 개별 철강재를 조준사격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이유다.
철강 면제 협상을 마친 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우려는 현실화했다. 미국은 13일 넥스틸 등 한국산 유정용 강관 제조업체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전가의 보도’ AFA를 동원했다. 상무부는 넥스틸이 제출한 자료가 특히 미비했다며 이를 책상에서 치워버렸다. 자신들이 덤핑률을 추정한 뒤 75%의 관세 폭탄을 내던졌다.
업계는 미국이 다른 철강재에 대해서도 이 같은 방식을 반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상 목표는 자국 제조업, 그중에서도 철강업의 부활이다. 대미 철강 수출 3위인 한국을 쿼터로 묶어뒀지만 세계 최대 철강 수출국인 중국을 막지 않으면 이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미 수백%대 관세로 중국의 직접 수출을 막아뒀지만 중국산 철강재는 다른 나라로 꾸준히 흘러들어가고 있다. 중국산 저가 소재가 세계 곳곳에 들어가면 글로벌 철강재 가격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미국산 철강재 가격을 낮추는 압력으로 돌아온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산 철강재를 가져다 쓰는 국가를 향해 무역공세를 높이는 식으로 중국을 간접 압박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중국산 철강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한국이 여전히 미국의 공세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넥스틸은 이번 조치로 무역확장법 232조 면제 효과가 사라졌다. 면제 조건으로 받은 쿼터(지난해 강관 수출량의 51%)를 채우기도 쉽지 않다. 한국산 강관은 현지 가격보다 15% 정도 저렴하지만 이를 훨씬 웃도는 관세가 붙은 만큼 수출에 차질이 불가피해서다. 미국이 이번처럼 다른 철강재에도 고율의 관세를 매기면 한국이 25% 추가관세 면제 조건으로 받은 쿼터제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미국의 조준사격에 한국은 속수무책이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맞불을 놓을 수도 있지만 대북 문제를 풀어갈 핵심파트너인 미국과 각을 세우는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럽다. 업계도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다. 매년 나오는 판결을 미국 내 행정법원 격인 국제무역법원(CIT)에 제소하는 게 고작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듬해 판결을 통해 다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그만이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