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1986년 1월2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된 지 73초 만에 공중 폭발했다. 탑승한 우주비행사 7명이 모두 사망했다. 그중 여성 교사 크리스타 매컬리프는 최초로 우주에서 원격강의를 할 예정이었기에 특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발사장면은 생중계되고 있었고 약 17%의 미국인들이 폭발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사고 소식은 빠르게 퍼져 미국인의 85%가 사고 한 시간 내에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곧바로 대통령 직속 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위원회 위원으로는 달에 처음으로 착륙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이자 천문학자인 샐리 라이드, 그리고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포함됐다.
사고는 로켓 부스터 내에서 연료가 새지 않도록 이음매 부분을 메워주는 고무 오링(o-ring)이 추운 날씨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서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파인먼은 TV로 중계된 청문회에서 고무 오링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탄성을 잃게 되는지 얼음물에 담그면서 설명했다. 파인먼은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개발한 공로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챌린저호 사고 당시 그는 67세였고 암투병 중이었기 때문에 조사위원회에 참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고민 끝에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파인먼은 다른 위원들이 주로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경영진과 책임자들과 만나는 동안 현장 기술자와 실무자들을 접촉해 근본적인 사고원인을 파고들었고, 결과적으로 고무 오링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우주비행 경험이 있는 과학자인 라이드가 고무 오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힌트를 줬다고 한다. 결국 챌린저호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밝혀내는 데 과학자들이 핵심 역할을 한 것이다.
2014년 4월16일, 476명이 탑승한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운행 도중 침몰했다.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172명의 절반은 해경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 등 민간선박에 구조됐다. 3년 동안이나 바닷속에 있던 세월호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후에야 인양이 시작됐다. 급박하게 구조가 진행돼야 할 시간에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 침실에 있었다.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후 대통령의 첫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당시 청와대는 거짓으로 입을 맞추고 문서를 조작했다. 실시간으로 11회 서면보고를 했다는 것도 거짓이었다.
사고현장에 출동한 해경은 세월호와 교신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직접 선체에 진입해 구조활동을 벌였더라면 전원 구조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해경은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고 선체에 진입해 구조를 시도했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위부터 아래까지 온통 거짓으로 점철된 상황이다. 4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는 아직 침몰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4년의 시간 동안 진실을 알려줄 물증은 지워지고 감춰지고 흩어졌다. 이제 세월호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남겨진 미미한 단서들에서 최대한 진실을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미미한 단서에서 최대한의 진실을 끌어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과학자들이다. 예를 들면 천문학자들은 300년 전에 폭발한 초신성의 빛이 성간물질에 반사돼 지구로 돌아오는 것을 관측한 뒤 그것이 어떤 초신성인지 밝혀내기도 한다. 챌린저호의 사고 원인을 알아내는 데는 과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 많은 부분이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는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알아내는 데도 과학자들의 전문성이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 촛불집회 때도 과학자들이 집회참가 인원을 과학적으로 추산해 제시한 적이 있다. 세월호 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데 과학자들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