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 정부서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포스코·KT의 수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결국 중도 사퇴하고 말았다. 권 회장은 18일 열린 긴급 이사회에서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기 위해 젊고 박력 있는 분에게 회사 경영을 넘기는 게 좋다”며 전격적으로 사임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한 권 회장의 임기는 원래 2020년 3월까지였다.


권 회장이 임기를 2년이나 앞두고 돌연 사퇴한 것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권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재계에서는 외부 압박에 따른 중도하차가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지난달만 해도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권 회장은 현 정부 들어 대통령 경제사절단에 빠지면서 줄곧 퇴진설에 시달려야 했다. 더욱이 시민단체들이 퇴진을 촉구하며 검찰 수사를 의뢰한 것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전날에는 황창규 KT 회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서 20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다. 포스코와 엇비슷한 처지의 KT 역시 때아닌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에 시달리는 현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와 KT 수장이 수난을 겪는 모습을 보면 착잡하기만 하다. 두 회사는 민영화 이후 주인 없는 회사로 취급받으며 외풍에 시달렸고 CEO들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는 흑역사를 반복해왔다. 정부가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기업인데도 외부에서 경영권을 흔들고 간섭을 일삼아온 것이 어느새 관행처럼 굳어진 상태다. 이는 비단 포스코나 KT에만 그치지 않는다. 수장 자리를 놓고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린 금융회사나 공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러니 누구든 권력만 잡으면 전리품이나 되는 것처럼 자기 사람 심기에 골몰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CEO가 경영에 전념하지 못한 채 정치권의 눈치나 살피고 여론 향배에 흔들린다면 정상적인 기업으로 활동하기 어렵다. 경영상 실패나 법적 문제가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외부 정치환경 변화에 따라 민간기업이 흔들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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