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도 범법자?"…일상 파고든 매크로

[위법 기준 모호한 매크로 프로그램]
게임 캐릭터 육성·공연티켓 구매 등
서버 장애 야기땐 처벌 받을수있지만
현행법 제재 근거 미미해 개선 필요


평소 ‘리니지M’ 게임을 즐기는 직장인 류모(30)씨는 지난 11일 엔씨소프트로부터 게임 이용제한 처분을 받았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캐릭터 레벨을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류씨는 “남들도 다 매크로를 쓴다고 하길래 별 생각 없이 사용했다”며 “최근 매크로가 사회적 논란거리인데 이번 사건으로 혹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18일 법조계와 온라인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매크로가 댓글조작에 사용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상생활에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온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드루킹’ 김모(48)씨 일당이 포털사이트 댓글조작에 사용한 매크로는 주식 투자, 게임 캐릭터 육성, 티켓 구매 등 일상 속에서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류씨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시 범법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매크로 사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분야는 게임업계다. 류씨처럼 매크로를 이용해 게임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렇다 할 법적 처벌을 할 수는 없다.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르면 매크로를 제작하거나 배포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단순히 매크로를 이용만 한 사람은 처벌할 규정이 없다. 실제 리니지M의 경우 매크로를 게임에 이용한 것이 드러나 게임 계정 사용이 정지되는 이용자가 매주 수만명에 이를 정도로 많지만 계정 정지 외에 별도의 사법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

공연 티켓을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입한 경우는 어떨까. 개인이 콘서트나 공연 티켓을 사기 위해 매크로를 이용했다면 불법이 아니다. 때문에 인기 공연이 티켓 발매 직후 1분도 채 안 돼 매진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하지만 처벌 대상은 아니다. 반면 암표 거래를 목적으로 매크로를 이용했다면 불법이다. 경범죄처벌법상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암표 판매를 현장이 아닌 온라인에서 했다면 사법 제재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6년 8월 한 암표상이 매크로를 이용해 콘서트 티켓 수백장을 대거 매입해 경찰에 붙잡혔지만 온라인으로 재판매한 행위는 관련 제재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형사처분을 피하기도 했다.

주의할 점은 음성적인 거래 등이 없다고 해서 매크로를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각종 온라인 예매 서비스를 매크로를 통해 과도하게 이용하다 해당 업체 서버에 피해를 입히면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 2015년 12월 국내 유명 휴양림·캠핑장 자리를 매크로로 반복 예약한 혐의로 컴퓨터 프로그래머 안모(40)씨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매크로를 활용해 포털이나 게임 등 전체 시스템을 교란하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매크로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스템을 교란하려는 시도가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업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라면서 “다만 시스템 교란 행위를 기술적으로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현실적으로 법적 처벌까지 이르는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경범죄 처벌법이나 공연법 등의 개정을 통해 온·오프라인상 암표 판매 행위에 대해 금지하고 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통신판매업자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다량으로 특정 물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일어나고 소비자의 정당한 이용 행위를 저해하면 해당 물품 구매를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정확히 정의하고 이를 위반하면 제재를 유도할 수 있는 조항 신설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매크로의 불법적 사용을 제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이번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서 보듯 사후적으로 업무방해죄 등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지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디지털위원장은 “매크로는 기술적으로 막기도 어렵고 현행법으로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며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 목적으로 매크로를 이용해 기업이 피해를 입으면 형사범죄 등으로 처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서종갑·박진용·양사록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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