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인공지능(AI)의 발달로 전 세계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보다 정확히는 ‘대체’되고 있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자동차 공장, 편의점과 무인자동차 등은 아직 대세가 아니지만 조만간 일상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기계와 기술에 일감을 빼앗기는 이들은 불행히도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AI, 질병 정확히 진단할수 있지만
환자 돌보는 건 대신하기 어려워
명곡 작곡·어려운 번역 등도 못해
고용의 미래 ‘걱정’보다 ‘준비’를
이 같은 시나리오를 제시한 칼 프레이 옥스퍼드대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고용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이 교수가 언제나 강조하듯 자동화가 ‘고용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람들 간에 상호소통으로 발휘되는 창의성이 요구되는 일자리, 암묵지(tacit knowledge)가 필요한 일자리는 미래에도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암묵지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체화된 지식과 노하우를 뜻한다.
예를 들어 AI가 인간 의사보다 더 정확히 환자의 질병을 진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환자를 돌보는 업무는 인간 의사와 간호사들을 기계가 대신하기 어렵다. 또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유명한 클래식 음악을 입력하면 작곡 알고리즘이 이에 기반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알고리즘이라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나 아르놀트 쇤베르크처럼 뛰어난 곡을 작곡할 수는 없다. 번역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발전된다 해도 토씨 하나로 뉘앙스를 달리하는 까다로운 외교협상이나 문학작품 번역은 전문 번역가를 거쳐야 한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AI·기계에 대한 반발도 예상된다. 인간과 기계의 대립구도가 만들어지고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AI 분야의 권위자인 서배스천 스론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AI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며 인류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교육을 강조한 바 있다. 프레이 교수도 미국인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택한 이유 중 하나를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로 손해를 입은 이들 덕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프레이 교수는 “AI는 많은 직군에서 근로자들의 역량을 보완해왔다”며 “자동화 시대에 접어든 뒤 반복적이지 않은 업무를 맡는 근로자들의 임금은 상승 추세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AI를 배척하기보다 어떻게 잘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기술 발달로 인한 일자리 양극화는 계속될 것으로 봤다. 그는 “일자리 양극화는 지난 1980년대부터 노동시장에서 관측돼왔다”며 “특히 AI의 발전은 중산층 일자리를 위협해왔고 저개발 국가에서는 공장 자동화가 커다란 리스크”라고 설명했다. 선진국들은 산업화 시대의 공장들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들이 일정 수준의 부(富)를 누릴 수 있도록 했지만 저개발 국가는 이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자동화된 공장이 도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프레이 교수는 “이들 국가의 경우 근로자의 기술력을 계발하고 새로운 성장 모델을 고안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술발달로 일자리 양극화 지속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 가능성
기술력·성장동력 확보 등 힘써야
로봇세? 임금보험으로 지원을
선진국에서도 일자리 대체로 인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 또한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일자리를 대체할 로봇에 세금을 물리자는 ‘로봇세’ 관련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레이 교수는 “로봇세는 오히려 근로자들의 잠재적 미래소득을 제한하는 등 역효과가 생길 것”이라며 “어떤 근로자의 일자리가 사라져 어쩔 수 없이 더 낮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면, 예를 들어 ‘임금 보험’을 통해 그들의 수입을 보전해주는 방식이 낫다고 본다”고 밝혔다. 기본소득제도 고려될 수 있지만 “기본소득제의 경우 일하지 않으려는 근로자가 생겨날 수 있어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프레이 교수는 예상되는 갖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자동화가 보다 빨리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 판사들의 판결을 조사한 결과 아침 식사 후 인슐린 수치가 높을 때는 호의적 판결의 비중이 높았지만, 아침 간식을 먹기 전까지는 이 비중이 낮아졌다. 점심 식사 이후에도 마찬가지 패턴이 나타났다. 프레이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중요한 결정이 내려져서는 안 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측도 경계했다. 그의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 일자리의 47%가 사라진다”는 식으로 오독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프레이 교수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또는 잠재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근거해 미래를 계획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한 글로벌 컨설팅그룹이 “오는 2025년까지 4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3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관측을 제시한 데 대해 “그런 수치를 예측할 방법은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단정 짓기보다 신중하게 추세를 보고 분석하는 학자다운 발언이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