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떠밀려온 플라스틱이 해변을 뒤덮고 있는 모습. /출처=유엔환경계획 한국위원회
지난 2월 스페인 해안가에서 사체로 발견된 10m 길이의 고래 뱃속에는 29㎏의 플라스틱이 엉켜 있었다. 비닐봉지·포대·그물·병뚜껑·석유통 등이 소화기관을 막아 비쩍 마른 채 고통 속에 죽어간 것이다.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와 폐수로 몸살을 앓는 필리핀 보라카이섬은 오는 26일부터 바다 정화와 하수도 정비를 위해 최소 4개월간 폐쇄된다.
이처럼 페트병·컵·포장재·비닐·스티로폼·생활용품·장난감·자동차범퍼·화학섬유·전자제품·어망·부표 등이 바다로 흘러들어 해류가 모이는 지점에 한반도 7배 크기에 달하는 쓰레기 섬이 생길 정도로 폐플라스틱 문제는 심각하다.
1950~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플라스틱은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 나일론 등 석유에서 나온 여러 분자를 결합해 만든 화학물질이다. 만들기가 쉽고 가벼우며 물성이 뛰어난데다 값도 싸다. 다양한 모양도 내고 색깔도 예쁘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플라스틱의 경우 매립해도 수백 년간 썩지 않는데다 태우면 다이옥신 등 발암성 물질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내분비계 장애물질인 환경호르몬이 많이 포함돼 있고 기름 성분과도 친해 독성화학물질이 잘 달라붙는다. 비닐봉지 하나가 5㎜ 이하 175만개가량으로 부서지거나 화장품·치약·샴푸·보디워시 등에 처음부터 포함돼 있는 미세 플라스틱도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화장품 등 1차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가 점차 이뤄지고 있으나 엄청난 규모로 강과 바다를 떠돌면서 이를 물고기와 어패류 등이 먹고 다시 인간이 섭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1위다. 최근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에 따르면 인천 해안과 낙동강 하구의 미세 플라스틱 농도가 세계 2·3위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중국이 등급이 낮은 플라스틱 등 24종의 폐품을 수입 금지하자 우리나라와 미국 등 세계적으로 쓰레기 수거 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장 1회용 플라스틱과 비닐 사용을 줄이거나 일부 금지하고 재활용 시스템을 정비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아예 분해돼 없어지는 ‘바이오 플라스틱’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높여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것도 과제로 등장했다. 올 1월 KAIST의 이상엽 특훈교수팀과 김경진 경북대 교수 공동연구진은 페트병을 만드는 데 쓰이는 PET를 분해하는 효소의 3차원 구조를 밝히고 그 효소의 성능을 개량해 조금 더 빨리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만들어 학계에 보고했다. 최근 영국 포츠머스대와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 공동 연구진도 페트 분해 효소를 만들어 독성 없이 원 제품과 비슷하게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2년 전 일본의 한 플라스틱 재처리 공장에서 발견됐던 플라스틱을 먹는 박테리아의 구조와 분해 원리를 연구하다 나온 것이다. 그동안 페트병은 재활용하면 품질이 떨어져 불투명한 섬유나 카펫 등으로밖에 쓸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존 맥기언 포츠머스대 교수는 “박테리아 진화원리를 보기 위해 태양 빛보다 100억배 강한 엑스레이 빛을 쏴 원자 등을 연구하다 변종 효소를 만들었다”며 “플라스틱 쓰레기나 석유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효소를 쓰려면 생산단가도 낮춰야 하고 대량생산도 해야 하는 것이 숙제다.
바이오 화학 산업의 가치사슬. /출처=한국화학연구원
옥수수·사탕수수·해조류 등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화학연구원의 경우 PLA를 새로운 중합공정 방식으로 만들어 저렴하게 생분해성 소재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 단량체(ISB·FDCA)를 활용, 성능이 향상된 PEF 수지를 개발해 기존 페트 소재를 대체하는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일반 플라스틱보다 비싸고 성능도 일부 떨어진다. 이상엽 특훈교수는 “2010년대 들어 바이오 단량체를 활용한 신규 바이오 플라스틱의 경제성이 점차 높아져 이론적으로는 포장용뿐만 아니라 산업용으로까지 사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발전소에서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로 변환하는 것도 다이옥신 등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술적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성도 높여야 한다. 황성연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장은 “생분해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단량체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는데 국내에서도 대량생산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을 규제하고 바이오 플라스틱의 사용을 늘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