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베딩 브랜드 ‘에이미루시’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
‘남들과는 다르게, 나만의 독특함을 갖춘’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말은 옛것이 된 지 오래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본인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 이들은 이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겉모습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속옷과 양말부터 집 내부 인테리어까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사람이 많다. 실생활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제품에서 개개인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디자인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거의 모든 제품.’ 이 말은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을 찾기 힘든 분야가 아직 남아있다는 의미다. 침구 제품이 대표적이다. 모노톤과 꽃무늬라는 단조로운 디자인이 대세를 이룬 것이 벌써 수년째다. 그 틈을 파고들어 창업에 성공한 업체가 있다. 시장에 등장한 지 겨우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디자인 베딩브랜드 ‘에이미루시’가 그 주인공이다.
◇어머님들이 이어준 인연
에이미루시의 공동 창업자인 이예규(27·오른쪽)·오한샘(26) 대표.
에이미루시의 공동 창업자인 이예규(27·오른쪽)·오한샘(26) 대표, 둘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희 어머님들이 당시에 여성 최고경영자(CEO) 모임을 하고 계셨거든요. 분기에 한 번 정도 만나셨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같이 어울렸어요.”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1년에 많이 만나봐야 두세 번에 그쳤던 탓이다.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성인이 되면서부터다. 술 한잔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서로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어머님들 덕분에 알게 된 둘은 이제 다시 어머님들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책 모임을 함께 하며 사업 조언을 듣는 식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님들을 따라다니며 사업 얘기를 들었던 게 창업에 큰 힘이 됐어요. 사업 아이템을 정하고 창업을 하기까지 큰 위기가 없던 원동력이기도 하죠.”
◇“나는 저런 거 덮고 자고 싶지 않아”
사업을 하는 어머니를 두긴 했지만,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대표는 남들처럼 대기업에 입사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오 대표도 뉴욕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하는 유학생 신분이었다.
이 대표가 먼저 꿈을 이뤘다. 2015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 화장품 마케팅 부서로 입사하게 된 것이다. 꿈꿔왔던 일의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겨우 반년 일하고 그만뒀어요. 퇴사 결심은 사실 입사하자마자 굳혔다고 봐야죠. 제시간이 아예 없었거든요. 오후 12시 퇴근이 일상이었죠. 문득 2년 선배의 모습을 봤는데,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고요. 제 2년 후 미래라는 생각을 하니 퇴사밖에 답이 없던 거죠.”
이 대표는 이런 고민을 오 대표에게 나눴고, 자연스럽게 같이 사업을 해보자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방학 때 한국을 찾은 오 대표와 함께 간 동대문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은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에이미루시의 창업 아이템, ‘단조로운 디자인의 침구를 개성있게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는 동대문의 원단 시장에서 우연히 떠올랐다.
각양각색의 옷 사이로 10년 전에나 통했을 법한 침구 원단이 보인 것이다.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침구는 늘 비슷하고 특색 없는 모습이었다. ‘왜 우리는 항상 비슷하고 심심한 이불을 덮고 잘까’라는 고민이 창업 준비로 연결되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유학생과 대기업 퇴사자, 둘이 만나 에이미루시
창업 아이템을 결정한 이 대표는 곧 회사를 나왔고, 오 대표도 얼마 후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전에도 온라인 상으로 사업 준비를 함께 하긴 했지만, 물리적인 거리와 시차 탓에 빠른 진척이 힘들었다.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뭉친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먼저 회사 이름을 지어야 했다. 서로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자는 의미에서 오 대표의 영어이름 ‘AMY(에이미)’와 이 대표의 영어이름 ‘LUCY(루시)’를 합쳐 에이미루시라는 회사명을 만들었다.
“시작은 창문도 없는 10평 정도의 작은 사무실이었어요. 상가 건물 2층의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월세가 30만원 정도였죠.”
돈이 없으니 믿을 것은 둘의 시너지뿐이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침구 디자인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오 대표가 맡았다. 이 대표는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한 경험을 그대로 살려 사업 전반을 책임졌다. 그렇게 지난해 10월 에이미루시가 시장에 등장했다.
◇‘제품이 아닌 공간을 팔자’
일반적으로 창업에 나선 업체가 처음부터 순이익을 내며 성공 가도를 달리기는 쉽지 않다. 간혹 극소수의 회사가 이런 통념을 깨고 등장과 동시에 인기를 얻는다. 에이미루시가 바로 이런 사례였다.
“처음 3주 동안 800만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였죠. 당시만 해도 ‘우리의 디자인이 통할지’, ‘사람들에게 제품을 잘 알릴 수 있을지’와 같은 고민을 할 때였거든요.”
원동력은 남들과는 다른 전략이었다. 에이미루시는 포탈 사이트의 쇼핑 채널에 입점하면서 영업에 뛰어들었다. 대부분의 타사 제품들은 단순히 침구 사진만 올리는 상황에서 두 대표는 ‘제품이 아닌 공간을 팔아보자’는 목표로 접근했다.
에이미루시는 ‘제품이 아닌 공간을 팔자’는 전략으로 침구과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사진을 온라인 쇼핑 채널에 올렸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침구와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사진을 올리는 식이었다.
“다른 회사와 아주 약간의 차이를 뒀는데도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했어요. 특히 2030 여성들의 주문이 끊이질 않았죠. 침구 사진을 올릴 때 벽에 패브릭 포스터 제품도 걸었는데, 이것도 대박이 났어요. ‘나도 저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처럼 저런 침대에서, 예쁜 포스터가 걸린 방에서 지내고 싶다’는 욕구를 끌어올린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1+1>2
‘아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두 대표 주변에서도 창업 전부터 그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데다, 어머님들끼리도 친한 탓이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셨는데, 저희는 그런 걸 한 번도 못 느꼈어요. 오히려 함께 해서 좋은 측면이 훨씬 많았죠.”
가장 좋은 것은 서로를 잘 이해한다는 점이다. 즐거울 때는 함께 즐기고, 힘들 때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둘의 업무가 분업화돼 있다는 점도 공동 창업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던 이유다. 이 대표는 디자인이나 리빙 분야의 문외한이다. 대신 전문가인 오 대표가 부족함을 메꿔준다. 반대로 오 대표는 회계나 마케팅 등을 알지 못한다. 역시나 이 대표가 오 대표의 약점을 채워준다.
이예규·오한샘 에이미루시 대표의 부산 여행 사진. 두 대표는 일에 치여 체력이 떨어질 때면, 함께 여행을 떠나 에너지를 충전한다.
“일 하다가 지치고, 아이디어가 떨어지면 둘이 여행을 가요. 최근에도 부산을 함께 다녀왔죠.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힘든 점을 털어놓고 목표를 다시 설정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오는 거에요. 함께 회사를 이끌어가는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30대에 은퇴하는 게 꿈
두 대표는 ‘30대에 은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평일과 주말의 구분을 두지 않고 매일 업무에 치여 살다 보니 생긴 꿈이다. 바쁜 게 당연하다. 이제 만든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직원 수는 공동 대표 두 명이 전부인 회사가 어느새 연 매출 15억원을 목표할 만큼 커진 탓이다.
두 대표의 역할을 제품 디자인과 마케팅에 그치지 않는다. 촬영부터 편집 역시 오롯이 둘이 감당해야 할 업무다.
“할 일은 많은데, 아무래도 벅차요. SNS 채널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죠. 저희 제품의 인기가 너무 빨리 올라가면서 얻은 ‘성장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직원들을 더 뽑아서 보다 체계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나가야죠.”
에이미루시의 주력 상품 중 하나인 패브릭 포스터. 독특한 개성의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 에이미루시의 주력 상품은 침대 커버와 벽에 거는 패브릭 포스터였다. 모두 가정에서, 침실에서 사용하는 제품이다. 앞으로는 오피스 시장으로도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마우스 패드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역시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전략이다.
“30대에 은퇴하고 싶다는 건 정말 꿈일 뿐이에요. 진짜 목표는 앞으로 10년 정도 정말 열심히 일해서 에이미루시를 더 많은 직원을 책임지고, 더 멋진 제품들을 만들어 내는 회사로 키워내는 겁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