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북미 정상회담 준비도 본격화한 가운데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당사국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남북미 3국 정상들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전환을 위한 빅딜을 마련 중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 방북할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미 3개국 혹은 남북미중 4개국이 한국전쟁의 종전 선언 가능성을 염두에 둔 담판을 준비하려는 차원으로 이해된다.
이 같은 빅딜은 ‘남북→북미→한미 및 북중→남북미 혹은 남북미중’에 이르는 순차적 정상회담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물꼬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먼저 튼다. 오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두 정상이 만나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원칙적 합의를 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논의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평화정착의 구체적 방안으로 상호 간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기 위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적대적 행위 중단의 개념에 대해 청와대 측이 거론한 것은 지난 1992년 남북이 체결한 불가침 합의다. 해당 합의를 토대로 이를 어떻게 정상회담에서 다룰지 검토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설명이다. 불가침이란 상대국을 무력으로 선제공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게 하려면 핵을 포기해도 북한의 체제를 지킬 수 있다고 안심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며 “(불가침 합의를 비롯한)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이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해 거론되는 것은 그런 맥락”이라고 소개했다. 이와 더불어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인 비무장화’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DMZ에서 중화기를 철수시킴으로써 군사적 긴장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방안이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청한 당국자는 “남북이 이미 불가침 합의를 했지만 북한은 이후로도 여전히 자국 헌법에 선군노선을 명시하고 있고 군사도발을 지속해 학계에서 실효성 논란이 이어져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불가침 합의가 자칫 북측의 군비통제 요구로 이어져 한국의 전쟁억지력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북한의 노동신문이 1990년 9월3일자 기사를 통해 통일을 위한 평화적 환경을 갖추기 위해 먼저 남북 불가침 선언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무력을 10만명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남한에서의 미군 및 핵무기 철수를 주장했던 것이 이 같은 우려의 근거다. 이미 미군의 전술핵은 한국에서 철수해 있고 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 때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신 한반도에서 미군의 전략무기 배치를 줄이거나 철수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따라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실효성 있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불가침 합의를 뒷받침할 북한의 실질적인 후속방안 실천 약속과 더불어 한국 및 주한미군의 전쟁억지역량 유지에 대한 북측의 용인을 얻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이 이 같은 과제를 잘 풀어 성공적으로 양자 회담을 마무리한다면 늦어도 6월 초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동결 및 폐기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을 약속하면 미국이 북미수교와 인도적 지원 재개 등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담판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맺어진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협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1년 내에 가시적인 비핵화 성과를 이루기를 바라는 만큼 북한이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얼마나 빠르고 확실하게 동결, 봉인하고 해체할지가 담판의 성공을 좌우할 열쇠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북미 정상이 만족할 만한 합의에 이른다면 곧바로 한반도 정전협상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중국이 우리나라와 함께 정상회담을 열고 항구적 한반도 평화체제 안착을 위한 협정, 혹은 선언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이 자국의 이해를 내세우며 까다로운 협상조건을 내걸 경우 일단 중국을 배제한 남북미 3자 정상회담 형태로 추진될 여지도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