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책에 쌀 생산조정제 좌초

쌀 공급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밭작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쌀 생산조정제가 농가의 외면으로 사실상 좌초됐다. 쌀값이 쌀 때 대량 수매해 가격을 올려놓고는 정작 쌀 값이 올라가자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쌀 재배를 억제하는 오락가락 정책이 결국 실패로 귀결된 것이다.

1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논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쌀 생산조정제) 신청 실적은 마감 시한을 3일 앞둔 17일 기준으로 2만8,000㏊그쳤다. 농식품부가 올해 목표로 한 5만㏊의 절반에 불과한 규모다. 쌀 생산조정제는 벼를 콩이나 감자 등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농가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농식품부는 3,4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1ha 당 340만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농가의 반응은 차가웠다. 익숙한 벼농사 대신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농가의 관계자는 “보조금을 많이 준다길래 고민을 했었다”며 “한 번도 안 지어 본 농사를 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해 쌀을 대규모로 매입하면서 쌀 가격을 올렸줬던 것도 생산조정제 실패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격이 떨어지면 정부가 알아서 가격을 끌어 올려줬기 때문에 굳이 다른 작물로 전환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중순 쌀값이 한 가마 당 12만 6,000원대로 떨어지자 37만 톤을 사들였고 쌀 가격은 올라갔다. 지난달 기준 쌀값은 한 가마당 17만원 선이다. 이 때문에 “쌀 농사를 하지 말라면서 쌀값을 지탱해주는 정부의 대책이 앞 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쌀 생산조정제가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서 올해에도 공급 과잉이 전망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생산조정제 참여율이 목표 5만㏊의 50% 수준인 2만5,000㏊에 그칠 경우 15만t의 초과 공급 물량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정부가 쌀을 대규모로 매입하는 것도 쉽지 않아 쌀값이 하락할 것이란 관측을 제기하고 있다. 쌀 생산조정제 사업을 통한 보조금 지급에 예산을 투입한 터라 ‘실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일단 벼 재배 상황 등을 지켜보고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벼 모내기가 아직 진행 중이고, 벼농사의 경우 기후, 날씨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현시점에서는 수급 상황을 예상하기가 조심스럽다”며 “추후 상황을 지켜보고 여러가지 준비를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