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적 저유가 시대에 직면한 쉘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석유 대기업 로열 더치 쉘 ROYAL DUTCH SHELL은 고유가 시대가 끝났다고 믿고 있다. 이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새 에너지 시대를 대비해 대대적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심해 석유굴착 플랫폼 아포마톡스 Appomattox가 최종 조립을 위해 텍사스 잉글사이드 Ingleside에 도착하고 있다. 멕시코 만에서 운영될 이 플랫폼은 배럴 당 50달러 수준에서도 이익을 내기 위해 비용을 절감해왔다.


작년 3월, 로열 더치 쉘은 캐나다 유사(油砂, oil sand) 지분을 대거 매각했다고 발표했다. 점성이 강한 수백만 배럴의 석유를 지상으로 뽑아 올리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시추보단 오히려 채굴에 가까웠다. 쉘은 72억 5,000만 달러에 이 유사자산을 매각했다. ‘세계적인 규모의 경쟁력을 갖춘’ 사업에 전념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언급되지 않은 이면의 이유는 기업분할(divestiture)과 관련이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쉘 본사에서 몇 달 동안 비밀리에 논의가 진행됐다.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비국영 석유기업 경영진이 내린 결론은, 에너지 산업이 근본적으로-수익을 냈던 유사 사업이 오히려 빚더미에 오를 수 있는 방향으로-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쉘 내부 애널리스트로 구성된 소위 ‘시나리오’ 팀은 세계 석유 수요가 못해도 10년 내에 정점에 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5년 단위로 계획을 짜는 사업에선 사실상 내일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 정점의 시기를 앞당긴 주범은 경영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가격이 낮아지고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 대체 에너지들-태양열, 풍력 및 전기 자동차-의 강세였다.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하면, 유가가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해 결국 유사 생산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게 회사의 판단이었다.

이런 현상은 하락 이후 응당 상승세가 이어졌던, 롤러코스터처럼 반복되던 유가 사이클은 아닐 것이다. ‘석유의 시대(Oil Age)’ 그 자체가 수십 년에 걸쳐 하락하는 시작점일 수도 있다. 쉘 내부에서 점점 더 확신을 얻고 있는 하나의 문장처럼, 유가가 ‘영구적으로 하락’할지도 모르는 전례 없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시나리오 팀의 수장 제러미 벤덤 Jeremy Bentham은 회사가 유사 매각을 결정하기 얼마 전, 그의 상사에게 메모로 조언을 했다. 그가 영국 억양으로 필자에게 전한 해당 메모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영구적 유가하락이 현실화하고, 회사가 유사(oil sand)를 계속 보유했다면 ‘말 그대로 엿 먹을 뻔’했다.”

쉘은 작년 첫 9개월 동안 90억 달러의 이익을 거둘 정도로 유동성이 풍부한 기업이다. 또 70여 국에서 9만 명의 직원을 고용 중인 대기업으로, 국가로 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독일에 이어 세계 7번째로 많다. 아울러 2,400억 달러 매출을 기록하며 지난해 포춘 글로벌 500 대기업 중 7위에 올랐다. 하지만 오늘날 존재적 위기를 맞고 있다. 쉘은 ‘2020년대 후반부터 2040년대 후반 사이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에너지 산업이 역사적인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석유에서 전기로의 전환이다.

이런 변화를 더욱 촉진하는 건 석유와 가스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대체하는 신재생 에너지다. 태양열과 풍력, 전지가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각국의 온실 가스 배출규제는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와중에서도, 유럽과 중국 및 다른 개도국들은 온실가스 규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쉘이 이 같은 새로운 에너지 환경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결국엔 ‘좌초 자산(stranded assets)’에 발이 묶일 수 있다. 주주들이 지하 석유와 가스 자원 탐사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지만, 수요 감소 탓에 회사가 해당 자원의 시추와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쉘의 CEO 벤 판 뵈르던 Ben van Beurden(59)은 결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이그 본사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는 잘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석유 대기업의 향후 방향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판 뵈르던은 “과거엔 우리가 모색하는 경로가 한정적이었고, 보수적인 접근 방식이 통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더 이상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한 전략적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효과를 발휘한다면, 판 뵈르던은 석유가 더 이상 경제의 주요 에너지원이 아닌 시대에 맞게 회사를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쉘을 거대 석유 기업에서 거대 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조치는 운영비의 대폭 삭감이다. 석유 시대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경쟁사대비 더 많은 이익을 올리기 위한 포석이다. 쉘은 천연가스에 대한 세계 수요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 증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판 뵈르던은 유가가 지난 10년 평균보다 훨씬 낮은 배럴 당 40달러에 그치는 상황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프로젝트들만 남기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축소해왔다.


캐나다 앨버타에서 진행되는 쉘의 애서배스카 Athabasca 강유사(oilsand) 프로젝트 : 지난해 쉘은 대부분의 유사 지분을 72억 5,000만 달러에 캐나디안 내추럴 Canadian Natural에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


쉘은 유사를 비롯해 낮은 운영비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수십억 달러 가치의 프로젝트들을 매각해왔다. 아울러 심해석유 굴착용 플랫폼과 내륙 셰일가스 프로젝트들도 간소화하고 있다. 쉘이 비용 절감보다 공학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오래 간직한 기업임을 고려하면, 중요한 문화적 변화임에 분명하다. 또한 쉘은 지난 2년 동안 직원 12%(1만 2,500만 명)를 해고했다. 대부분 평생 직장에 취직했다고 생각했던 직원들이었다. 감원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판 뵈르던의 두 번째 전략은 좀 더 어려운 것이다. 그는 진정한 최초 글로벌 기업이 되길 희망하며, 쉘의 위상을 에너지 주요 대기업으로 강화하려 하고 있다. 비록 재생 에너지 부문 진출 시도에 실패한 경험이 있지만, 좀 더 본격적인 진입을 추진해 궁극적으론 전기 판매 기업이 되고자 한다. 쉘은 북해에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짓고 있고, 오만과 캘리포니아에서는 태양열 발전단지를 건설하는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유럽 최대 전기차 충전소 기업과 영국의 전기 공급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쉘이라는 거대 기업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아직까지 작은 움직임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2020년까지 소위 ‘신규 에너지’에 대한 연간 지출을 10억 달러에서 약 20억 달러로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실현된다면, 이는 회사가 지난해 추산한 총 자본 지출 250억 달러 중 4~8%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판 뵈르던은 “막바지 실행단계에 이르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늘릴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현재 에너지 생산, 거래, 판매를 위해 회사가 활용하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막대한 양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작년 11월 말 쉘은 현재 판매하고 있는 에너지 제품과 영업활동의 탄소 집약성(carbon intensity)을 2035년까지 20%, 2050년까진 ‘절반’ 가량으로 줄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변화 위험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은 그 범위를 좀 더 명확히하고, 완화하라고 회사 측에 요구해왔다. 물론 쉘은 이미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쉘의 조치는 회사 역량을 보존하려는 판 뵈르던의 시도의 일환이다. 이는 과거 100년간 해온 일을 석유 이후 시대에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바로 에너지 시장을 유리하게 구축하고 활용해 모든 단계에서 최대 이익을 뽑아내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미래의 쉘은 화석 연료보다 깨끗한 전자 관련 네트워크를 더 많이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판 뵈르던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는 전기가 주축인 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산업 단지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단지 실험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진 않을 것이다. 이 부문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움직일 것이다.”

쉘의 치열한 행보는 석유업계가 전례 없는 압박을 받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드 매켄지 Wood Mackenzie의 수석 애널리스트 사이먼 플라워스 Simon Flowers는 “에너지 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연료 가격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르면 지금부터 10년 후, 그리고 ‘확실히’ 2030년 쯤엔 가솔린 및 디젤 연료에 대한 세계 수요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핵심 상품인 석유와 가스를 다른 에너지로 대체해야 하는 시대의 도래 자체가 엄청난 과제이다. 해결을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할 수 있을 때 미리 대비해 두어야 한다. 동시에 회사의 현재 주가를 너무 많이 떨어뜨려서도 안 된다.”

다른 주요 석유 회사들도 이 같은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프랑스 석유 기업 토털 Total은 2011년 캘리포니아 소재 태양 전지판 제조회사 선파워 SunPower 지분 60%를 13억 7,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2016년에는 프랑스 배터리 제조사 새프트 Saft를 11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후 선파워 주가는 인수거래 가격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태양열 부문과 배터리 사업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 졌기 때문이었다. 노르웨이의 스타토일 Statoil은 해상 석유굴착장치를 건설한 전문성을 활용, 해상 풍력발전단지 및 이산화탄소 포집과 저장에 관한 연구에도 투자하고 있다.


극단적 불확실성 : 세계가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에 따라, 석유 수요는 10년 후 혹은 2040년 대에 정점을 찍을 수 있다. 많은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쉘을 비롯한 석유 대기업들이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체 에너지의 부상으로 세계 경제 전반에 포진한 기존 산업도 재편되고 있다. 많은 고객들이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고 배전망 에너지의 판매가 줄면서, 주요 전기 생산자들이 손실을 막기 위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전기차를 허황된 꿈이라고 비웃던 자동차 제조회사들도 이젠 전기차 생산에 뒤늦게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기업들은 에너지 혁명을 예상치 못했다. 적어도 이렇게 빨리 진행될지는 몰랐다. 쉘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나리오 팀을 총괄하는 벤덤의 임무이다.

올해 59세로 옥스퍼드 출신인 그는 사내에서 ‘벤덤 교수’로 불린다. 실제로도 그는 임원이라기보단 교수처럼 보인다. 필자가 사무실을 방문한 날, 헐렁한 회색 정장에 운동화를 신은 그는 타원형 테이블 앞에 혼자 앉아 태블릿에 뭔가를 급히 메모하고 있었다.

빨간색 카펫이 깔린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수백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또 다른 벽면은 서류와 공예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 하나의 명판 안에 도도새의 그림이 들어 있었다. 네덜란드 선원들이 17세기 모리셔스 섬에서 이 새를 처음 발견했다. 그러나 서식지가 파괴되자 이 새는 멸종됐다. 이 명판이 ‘한때 번창했던 새’가 환경변화로 타격을 입고 변화 대응에 실패해 멸종의 운명을 맞았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명판은 지난 40년간 쉘의 시나리오 팀장들에게 계속 전수되어 왔다.

벤덤은 “쉘이 도도새의 길을 걷지 않도록 하는 게 나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쉘의 시나리오 팀장, 제러미 벤덤


5년 여 전, 그는 경영진에게 “석유 사업에 극단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경제적 변화를 알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 중에는 전기차의 부상도 있었다. 석유가 배럴 당 약 100달러에 판매되고, 가솔린 가격 역시 높은 상황에선 연료보다 전기 충전식 자동차 판매가 늘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석유 산업의 호황기였던 당시 쉘의 일부 직원들이 그런 우려가 과장됐다고 일축했다.

이후 2012년 10월, 판 뵈르던은 쉘의 화학제품 사업부에서 석유산업의 하류부문(downstream) *역주: 석유산업은 일반적으로 상류부문(Upstream)과 하류부문(Downstream)으로 구분된다. 상류부문은 원유의 탐사·시추·개발·생산까지의 단계, 하류부문은 그 이후의 원유 수송·정제·석유 제품 판매·기타 단계를 의미한다 담당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 중에서도 가솔린 판매 사업 일부를 전담했다. 벤덤은 판 뵈르던이 자신과 팀에게 한 질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전망한다면, 전기차는 얼마나 빨리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까?”

2014년 1월 1일부로 판 뵈르던은 쉘의 CEO에 올랐다. 그의 임기 첫 9개월 동안 유가는 약 90~100달러 사이에서 안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가을부터 급락하기 시작했다. 2016년 2월이 되자 유가는 배럴 당 29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유가가 하락하면서 이상한 현상이 목격됐다. 전기차 판매가 계속 증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이하 IEA)에 따르면, 2014~2016년 전기차 판매량은 32만 3,000대에

서 75만 3,000대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와 비슷하게, 2015~2016년 풍력 및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된 전 세계 전기 비중도 4.5%에서 5.2%로 상승했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고려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대체 기술 가격도 점점 더 낮아지고 있었다.

또 미국 국립 재생에너지 연구소에 따르면, 2010~2016년 미국 내 가정용 태양열 시스템과 풍력 발전단지를 통해 생산되는 전기의 평균 비용은 60% 가량 하락했다. 에너지 전문 리서치 기관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 Bloomberg New Energy Finance는 같은 기간, 일반적으로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전지 가격도 73%나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2016년 말, 벤덤과 그의 팀은 에너지 시장 내부에서 진행되는 근본적인 변화를 직감했다. 또 다른 일시적인 유가 하락 이상의 좀더 심층적인 변화였다.

벤덤은 다국적 기업의 사고방식을 움직일만한 촌철살인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내에서 국제 석유 산업의 새 시대를 ‘극단적 불확실성(radical uncertainty)’ 중 하나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 문구는 전 영국 중앙은행 총재 머빈 킹 Mervyn King이 그 해 초 출간한 책을 통해 유명해졌다. 저명한 20세기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의 사고에서 차용한 것이기도 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벤덤의 팀은 앞으로 쉘이 극단적인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4가지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회사는 이를 ‘4개의 세계(Four Worlds)’라고 부르고 있다.

이 시나리오들은 4분면으로 도식화되어 있다. 한 축은 세계 에너지 수요다. 나머지 한 축은 화석 연료의 수요를 줄이는 태양열과 풍력, 전기 자동차 및 기타 대체 에너지 기술의 침투 정도다.

쉘의 모델에 따르면, 높은 에너지 수요와 낮은 기술 조합이 현실화하면 세계 석유 수요의 정점은 2040년대 말이나 돼야 도래할 전망이다. 이 시나리오 대로라면 2040년 세계 에너지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는 각각 총 수요의 4분의 1씩을, 태양열과 풍력은 합쳐서 약 5%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쉘은 이 시나리오를 ‘현재에 집중하기(Live Now)’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낮은 에너지 수요와 높은 기술의 조합이 현실화하면, 세계 석유 수요는 이르면 202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을 것이다. 2040년 쯤엔 세계 에너지 수요 성장률이 그보다 훨씬 낮을 것이고, 석유와 가스가 각각 전체 비중에서 25%, 석탄이 20%, 풍력과 태양 에너지가 약 15%를 차지할 전망이다. 전체 에너지 규모 역시 줄어들 것이다. 에너지 효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쉘의 사업을 가장 크게 흔들어놓을 시나리오다. 회사는 이 시나리오에 ‘놀라운 신세계(Brave New World)’ *역주: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지만, 다른 문제들을 야기하기도 하는 사회나 상황 라는 이름을 붙였다.

쉘은 이 4가지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이 현실화 될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회사가 처한 딜레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 에너지 업계의 관심사는 앞으로 다가올 석유 공급의 정점이었다. 따라서 향후 30년 내에 세계 석유 수요가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는 개념을 수용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석유업계 베테랑들도 그 변곡점이 2020년대일지 혹은 2040년대일지-혹은 정확히 어떤 에너지가 석유의 자리를 대체할지-모른다는 사실이 더 당혹스럽다.

가이 아우텐 Guy Outen(57)은 짧게 깎은 머리 스타일에 오토바이에 정통한 호주 출신 전략담당 수석부사장이다. 그의 분석은 쉘이 미래를 좀 더 명확히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아우텐은 에너지 판도가 “복잡한 수준에서 복합적인 차원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1971년 이후 세계 에너지 파이의 크기는 두 배 커졌지만, 화석연료 비중의 상대적 크기는 약 80~85%로 상당히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아우텐에 따르면 이는 “복잡한 수준”의 세계였다. 변수들은 명확해 “계산을 잘하고 머리가 좋으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복합적인” 세계는 차원이 다르고 더욱 어둡기만 하다. 이 세계에서는 전망의 가장 기본적인 윤곽조차 불분명하다. 아우텐은 “전반적인 방향조차 불확실한데, 그 미래로 향하는 경로 또한 여러 갈래”라고 설명했다.


쉘 CEO 벤 판 뵈르던이 작년 9월 런던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쉘은 향후 경로를 선택하면서 수십억 달러가 걸린 도박의 대비책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즉, 벤덤이 인용하는 경제학 이론 문장처럼 쉘의 과제는 ‘최대 후회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대비책은 회사의 석유 및 가스 사업 효율화에서부터 시작한다. 지나치게 거대하고, 다루기 힘들고, 위험한 사업제국이 그 대상이다. 멕시코만 쪽 텍사스 해상, 브라질 쪽 대서양 해저 2마일에 있는 유정을 매우 정밀하게 시추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대규모 액화천연가스 공장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는 카타르 해상의 공장도 있다. 쉘의 ‘상류부문’, 즉 탐사 및 생산 활동을 총괄하는 앤디 브라운 Andy Brown은 이 공장을 “바다에 떠 있는 것 중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것”이라고 묘사했다. 이 사업부문은 또한 북해의 노후화된 프로젝트들, 텍사스에서 펜실베이니아에 이르는 지역의 대규모 셰일 가스전, 지구를 가득 메운 4만 3,000개의 주유소도 포괄한다. 맥도널드나 스타벅스보다 더 큰 소매 네트워크다.

일부 환경 낙관론자들은 이 화석연료 인프라를 그 자체로 “화석”이라고 묘사한다. 즉, 재생에너지로 인해 곧 불필요하게 될 유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판 뵈르던은 이를 “근본적인 경제적 난센스”라고 일축한다. 대부분의 에너지 애널리스트들도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각국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도입하면, 2020년 경엔 세계 석유 수요가 최고치에 이를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IEA는 실제 이 예상이 실현되더라도, 2040년엔 세계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석유 비중이 23% 정도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물론 2016년의 32%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치다. 즉,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하더라도 석유의 시대는 수십 년 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흐름에서 계속 이익을 내려면 오늘 당장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쉘의 대형 에너지 프로젝트는 10년 혹은 그 이상 동안 수익을 올리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100억 달러의 선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최근 쉘은 기존 회계 방식을 확장,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할지 결정하고 있다. 아직은 불안정하지만 향후 큰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움직임이다.

전통적으로 쉘은 프로젝트의 ‘순 현재가치(net present value)’ 전망, 즉 한 프로젝트가 현재 얼마만큼의 수익을 내는지를 비중 있게 고려해왔다. ‘내일과 오늘이 큰 차이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는 합리적인 계산법이다. 그러나 쉘은 앞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며, 유가가 ‘영구적으로 낮은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에 적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회계 방식을 다변화하기 시작한 이유다. 그 중 ‘가치-투자비율(value-investment ratio)’이라 불리는 방법을 통해선 한 개의 프로젝트가 아주 오랫동안 목표 이익을 내기 위해 유가가 최소 얼마여야 하는지를 측정하고 있다.

쉘의 상류부문 총괄 브라운은 “저유가 시대를 대비해 프로젝트의 복원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기존과는 매우 다른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헤이그에 쉘의 고위 임원들이 포진해 있다면, 휴스턴 사옥에는 쉘의 자랑인 공학 기술자들이 많다. 휴스턴 서부 12차선 고속도로 구간을 따라, 수많은 석유 및 가스 기업들이 아스팔트 포장 도로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이 지역엔 ‘에너지 회랑’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곳에 쉘의 심해 사업 본거지인 대규모 사옥캠퍼스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 D동에는 대부분 멕시코만 팀이 포진하고 있다. 건물의 내부 벽은 민망할 정도로 많은 석유 관련 사진들이 뒤덮여 있다. 바닥이나 천장에서도 해상 시추장치의 화려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카운터 위 문서 보관함은 시추공들의 장난감들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수중 밸브와 부속품들이다.


날로 효율적이고 저렴해지는 대체에너지 : 태양열 및 풍력을 비롯한 대체에너지와 전기차 구동전지의 비용이 극적으로 감소해 석유 생산업체들이 압박을 받고 있다.


이제 쉘은 이 문화를 날카로운 회계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첫 번째 ‘환자’는 비토 Vito라 불리는 유망했던 멕시코만 석유 프로젝트다.

비토는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 정도였던 2014년 초 처음 설계됐다. 쉘의 엔지니어들은 이 프로젝트에 큰 비중을 뒀고, 해저에서 확실히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유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기술적으로 경이로웠던 비토 프로젝트는 자신감이 과도했던 산업의 전형으로 전락했다. 값비싼 유물이 된 셈이었다.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그 해 가을, 와엘 사완 Wael Sawan이 쉘의 심해 부문 부사장으로 임명됐다. 두바이에서 자란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골드만 삭스에서 투자 은행가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당시 사완의 나이는 41세였다.

비토는 장기적으로 유가가 배럴 당 80달러선을 유지할 것이라는 대략적 가정하에 설계됐다. 2016년 초 새로 부임한 젊은 부사장은 팀원들에게 “유가가 40달러를 넘지 않아도 수익을 낼 정도로 비토를 효율화하지 않는 한, 이 프로젝트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역설했다. 쉘의 떠오르는 스타인 사완은 “그 상태의 유가로는 집행위원회 앞에 나가 회사 경영진에게 과거처럼 비토에 투자해달라고 요청할 순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약 1년간 그의 팀은 과감하게 비토 프로젝트를 정비했다. 이들은 플랫폼의 ‘상부하중’을 4만 톤에서 8,900톤으로 줄였다. 또 주 송유관이 막히더라도 플랫폼이 계속 석유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저의 보조 송유관을 없앴다(쉘은 관이 막혀도 안전에는 영향이 없고 생산에만 타격을 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회사 측은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했을 때, 신규 비토 프로젝트가 적정 규모를 유지하길 기대하고 있다.

비토를 살리려는 노력은 에너지 업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 심해 석유사업이 유지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심해 프로젝트에는 대규모 선투자가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그 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전 기간 동안 막대한 현금 이익이 파생된다. 판 뵈르던은 석유 수요의 성장률이 둔화되는 시기에도 “그리 나쁘지 않은 포지션”이라고 말했다.

쉘의 집행위원회는 앞으로의 효율화 작업에서 비토를 계속 추진할 것인지 여부를 올해 초 결정할 예정이다. 사완은 “행운을 빌어달라”고 말했다.

안정을 추구하는 쉘에는 악명 높은 사업 분야가 하나 있다. 쉘의 한 전임 CEO는 재생 에너지에 대한 초기 투자와 실험적인 전략을 “타는 냄비(pots on the fire)”라고 묘사했다. 쉘이 한창 뜨거운 재생 에너지 기술 분야에 한 발 늦게 손을 대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쉘은 태양전지판 제작에도 투자했다가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금새 발을 뺐다. 이 분야에서 제조 경쟁이 치열하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회사는 풍력 단지 개발에도 투자했으나, 해당 사업의 평균 마진이 심해유정에 비해 낮아 무의미한 투자라고 판단했고, 그 이후 손을 뗐다. 쉘은 수소에도 관심을 뒀다. 하지만 회사가 비축유를 과점한 사실을 규제당국이 파악하자, 2000년대 중반 이 분야 투자를 중단했다. 이후 쉘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업 분야에 다시 집중하게 됐다.

판 뵈르던은 “전에도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다. 그 결과 얻은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까지 정말 성공적이었던 것은 없었다. 꽤 괜찮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포기한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지난 실적이 아주 뛰어나다곤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실패 경험에서 한 가지 기본적인 교훈을 얻었다. 쉘이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실패한 이유는 이 분야를 전략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너무 소극적이고, 어설프게 대응했다. 필요한 대상에는 너무 적게, 불필요한 대상에는 반대로 너무 많이 투자했던 것이다.



몸집 줄이기 : 하루 17만 5,000 배럴의 석유를 시추할 수 있는 쉘의 아포마톡스(위쪽 사진) 석유 플랫폼이 곧 멕시코 만에서 운영될 예정이다. 이밖에도 비토(아래쪽 사진) 플랫폼을 추가적으로 효율화하는 계획은 쉘이 어떻게 자본투자 규모를 적정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판 뵈르던은 오늘날 쉘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엔 걸려 있는 것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그는 “금세기 후반부 에너지 시스템의 절반은 재생에너지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부분은 태양 에너지일 것이고, 풍력은 다양한 주요 틈새 시장에 위치할 것이다. 따라서 쉘이 (에너지 시스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비(非)석유·가스 부문에 참여하려 한다면, 이 같은 가치사슬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쉘은 이제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전기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고 있다. 세계적인 청정 에너지 발전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원대한 포부도 갖고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면, 이 전략은 활기는 띠고 있지만 일관성이 없다. 예를 들어, 쉘은 오만과 캘리포니아에 대규모 태양열 발전 단지를 건설하는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석유 생산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 태양열 발전 단지는 노후화된 유전 근처에 건설되고 있다. 이 유전은 지나치게 고갈돼 남아 있는 석유를 지상으로 끌어오기 위해선 증기 주입이 필요할 정도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증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천연 가스를 연소해야 한다. 이젠 쉘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이를 태양열로 생산할 것이다.

쉘의 좀 더 과감한 계획은 가스화력발전소 근처에 태양열 발전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발전 시스템 구축을 통해, 쉘은 신재생 에너지 차익거래 *역주: 한 지역에서 사서 다른 지역에서 비싸게 판매하는 방식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간 대의 발전량에 차등을 두고,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쉘은 호주에서 첫 운영을 시작했으며, 계속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한편 쉘은 해상에 거대 시설물을 건설하던 경험을 살려 해상 풍력발전단지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 풍력이 차기 대세 에너지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쉘은 보르셀 Borssele이라 불리는 네덜란드 북해에서 대규모 해상 발전에 투자한 적이 있다. 이제는 그 곳의 지분을 매각하고 다른 해상 풍력발전 프로젝트의 초기단계, 즉 가장 수익성이 높은 단계에 투자하고자 한다. 회사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풍력 단지 중에는 네덜란드 수역, 타 유럽 국가들의 수역, 대만 수역, 미국 동부 해상의 발전 단지 등이 있다. 풍력 발전단지 건설을 넘어, 쉘은 그곳에서 생산한 전력을 거래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쉘의 거래업체들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론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쉘은 다시 수소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 계획은 독일 전역에 400개의 수소 충전소를 설치하려는 실험의 일환이다. 쉘은 독일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는 이 사업이 궁극적으로는 신규 이윤을 창출할 대규모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장기적으로 수소가 세계 청정 에너지 네트워크의 중추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사실 수소는 에너지원이 아니라 에너지를 담고 있는 매개체다. 쉘의 계획은 생산비가 저렴한 지역에서 풍력과 태양열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한 후, 수소를 액화시키는 것이다. (액화 천연가스 거래 때와 마찬가지로) 이 액화 수소를 에너지가 부족한 시장으로 보낸 후, 수소전지를 통해 전기로 변환하면 된다. 거래업체와 대형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쉘은 에너지 수요가 가장 많은 곳-따라서 에너지 가격이 가장 높은 곳-에서 수소 판매기업으로서의 안정적인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쉘은 전지 구동 전기차 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회사는 작년 10월 뉴모션 NewMotion을 인수했다. 이 네덜란드 기업은 유럽에서 3만 여 곳의 전기차 충전 설비를 운영하고 있고, 서비스에 가입한 전기차 소유주들에게 다른 5만 곳의 충전소 접근권을 제공하고 있다. 쉘이 인수가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회사 기준에 비하면 소액투자였다. 2016년 회계 자료에 따르면, 뉴모션은 매출 1,350만 달러와 41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놀라운 유가 신세계 : 10년간 이어진 고유가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석유 산업은 지난 몇 년 간 큰 타격을 받았다. 쉘은 이제 주주들에게 유가가 다시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쉘은 12월에 좀 더 큰 규모의 인수를 단행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상업용 발전 및 천연가스 사업체 퍼스트 유틸리티 First Utility를 인수한 것이다. 양측은 거래의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대형 연금펀드 및 자산운용 업체들은 쉘의 행보를 비판해왔다. 수요가 최고점에 달하고 탄소 규제의 악영향이 나타날 경우, 좌초 자산에 발이 묶일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미개발 상태의 ‘검은 황금(석유)’을 수익을 보고 판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판 뵈르던에게 이런 비판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는 쉘이 좌초 자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포트폴리오에서 화석 에너지를 줄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계획이 실패할 경우, 회사가 직면할 위험을 산정하도록 사내 애널리스트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현 시점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가 변하고 있고, 그것이 의사결정과정에 반영되지 않았다면, 얼마만큼의 가치가 위험에 노출될 것인가?” 쉘에 따르면 이 연구결과는 4월에 나올 예정이다.

그날 오후, 필자가 쉘의 본사를 나가며 본 것은 로비에 전시된 대문짝만한 사각형 암석덩어리였다. 그 암석 속에는 10여 개의 가리비와 대합 조개 화석이 담겨 있었다. 가리비 껍데기는 쉘의 로고이며, 1800년대 초 회사의 초기 멤버 중 한 명이 가족 사업으로 장식용 조개 껍데기를 거래했다고 한다. 그 이후 석유의 시대가 왔다. 이제 곧 도래할 에너지의 전환기는 쉘의 진정한 도약을 이끌어줄 것이다.

만약 경영진이 오늘날 에너지 업계의 변동을 잘 헤쳐나간다면, 쉘은 앞으로 한 세기 정도 사업을 잘 운영할 것이다. 조개껍데기에서 석유로 변화한 쉘의 사업이 어떤 자원으로 옮겨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태양열이나 풍력? 아니면 또 다른 에너지원이 될 것인가?

반대로 쉘이 이 변환기에 살아남지 못한다면, 훗날 도도새처럼 인용될지도 모른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JEFFERY 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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