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1년째 공석이 된 위원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좌우하는 위원회 구성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서 불완전한 의사결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한이 한층 강화되는 만큼 위원회 구성부터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는 1년째 8명의 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원회는 국민연금 의결권이 지닌 특수성과·전문성·대표성을 고려해 정부(2명), 기업·사용자 단체(2명), 근로자(2명), 지역가입자(2명), 연구기관(1명)이 추천한 9명으로 구성된다. 정부 기관은 기획재정부와 국민연금이, 사용자 대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근로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역가입자는 소비자단체협의회와 공인회계사회 등이 위원을 추천해왔다.
정원은 9명이지만 지난해 5월 전경련에서 추천한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이 퇴임한 후 1년째 후임자를 못 찾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달 내에 임명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전경련이 의결권위의 상위 단체인 기금운영위에서 제외되면서 위원 추천권은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로 넘어갔다. 국민연금 의결권위는 보통 대기업 상장사의 첨예한 갈등 안건에 대해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한상의나 중기중앙회 소속 회원은 비상장사 혹은 중소기업이 주류다. 의결권 행사에 있어 상장사의 목소리가 왜곡될 수 있는 상황인 것. 한 재계 관계자는 “그나마 대한상의 추천 인물이라면 모르겠지만 중기중앙회 추천 인물이 포함된다면 비상장사의 의견에 따라 상장사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도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의 권한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의결권전문위는 기금본부가 요청한 안건만 심의하고 개별 안건의 독자 상정 권한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복지부는 제1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를 통해 의결권전문위원 3인 이상 요청 시 안건 부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도 공식화하는 등 의결권 전문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업계에서는 의결권전문위의 구성부터 형평성에 맞게 임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안을 경제 산업 비전문가들의 다수결로 결정하는 점을 우려한다. 만약 의결권전문위가 잘못된 선택을 해 발생한 천문학적 손실에 대해 책임 소재 및 손해배상 등도 문제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는 “의결권전문위는 기금운용본부보다 외부 압력에 더 취약하다”며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올해 의결권전문위의 심의 안건 수는 역대 최다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의결권전문위는 삼성물산 이사 선임과 감사위원 선임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KB금융지주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반대, 정관변경 안건 등도 심의했다. 또 백복인 KT&G 사장 선임과 KT&G 사외이사 현원 유지, 사외이사 선임 안건 등도 검토하기도 했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금 사회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민간 자산운용사에 주식 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모두 위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임세원·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