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비자유주의 국제질서(Il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주제로 아산 플래넘 2018이 열렸다. 왼쪽부터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김성한 고려대 교수, 다니엘 러셀 전 미 국무부 차관보, 소에야 요시히데 일본 게이오대 교수. /연합뉴스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24일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따라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포기하는 정도에 비해 경제제재 완화의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북한이 재래식 군사력을 감축할 때마다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아산플레넘 2018’ 기자간담회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이 빠르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핵을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이후에 대북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것도 그런 의도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베넷 연구원은 특히 단계적 대북제재 해제에 딜레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중 10%를 포기한다면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북한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반면 미국이 대북제재의 10%를 완화하면 그것은 굉장히 커다란 구멍이 돼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넷 연구원이 제시한 대안은 재래무기 축소를 인프라 건설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20만 명 규모의 북한 병력을 50만 명으로 줄일 경우 실업자가 되는 70만 명을 도로 건설 노동 인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 도로포장 설비를 공급해주면 노동자는 급여를 받아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추후 북한 경제가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동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은 전력과 상수도 등을 필요로 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 인프라 건설이야말로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며 “직접적 무역제재를 완화하는 것보다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중국·일본 등과 함께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군 감축을 보상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북한과의 긴장 완화 방안으로 결핵 치료와 관련한 협력을 제시하기도 했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 내 중요 이슈인 다제내성 결핵 치료를 위해 한미 양국이 300억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10개 대학이 각 30억 원 정도의 기금을 분담해 2~3년 간의 공동연구로 항생제 결핵백신을 만들어 북한 내 결핵을 퇴치하게 하는 방안이다.
베넷 연구원은 “미국이 북한 의사를 초청해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도 하나의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며 “이는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도 선제적 조치로써 이 정도는 충분히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그랜드 바겐’ 안에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뿐 아니라 재래무기 감축 방안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주적’이라고 규정하는 관점부터 변화돼야 항구적인 평화가 구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