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가 25일 AS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친정팀 로마에 대한 예의로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있다. /리버풀=로이터연합뉴스
축구 팬들 사이에 ‘인간계 최강’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라다멜 팔카오(AS모나코)가 원조 격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이던 팔카오는 지난 2011-2012시즌과 2012-2013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에 버금가는 해결사 능력을 뽐냈다. 메시와 호날두만의 영역인 ‘신계’ 바로 아래서 인간계 최강으로 대접받았다. 이후 루이스 수아레스(바르셀로나)는 스페인으로 건너간 후 두 번째 시즌인 2015-2016시즌에 메시·호날두를 제치고 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팔카오와 수아레스를 잇는 인간계 최강이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집트 축구영웅 모하메드 살라(26·리버풀)다. 25일(한국시간)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메시·호날두가 사는 신계에 입성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도 큰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물론 한 시즌 번쩍였다고 축구의 신을 언급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날의 살라는 축구계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그는 AS로마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안필드 홈경기에서 2골 2도움을 폭발했다. 5대2 리버풀의 승리. 11년 만의 결승 진출 가능성을 키웠다.
살라는 75분간 슈팅 4개를 했는데 모두 골문으로 향하는 유효슈팅이었고 이 중 2개가 네트를 흔들었다. 전반 35분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가운데로 살짝 쳐놓은 뒤 왼발로 선제골을 꽂았다. 반대편 포스트와 크로스바 사이를 정확히 꿰뚫는 핀 포인트 득점이었다. 10분 뒤 역습 때는 골키퍼를 넘기는 칩슛으로 2대0. 지난 시즌 로마에서 뛰었던 살라는 친정을 배려해 세리머니 대신 담담한 표정으로 양팔을 들었다. 살라의 이적료 4,200만유로(약 550억원)는 지금 돌이켜보면 완전히 헐값이었다.
슈팅 각도를 찾아 들어가는 본능적인 움직임, 어떤 지점에서도 위협적인 슈팅을 만들어내는 골 감각 등 살라는 메시·호날두 못지않은 기술을 앞세워 올 시즌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후반 들어서는 완벽한 어시스트로 앞서 몇 차례 득점 기회를 날려보냈던 사디오 마네의 어깨를 펴게 했고 역시 오른쪽을 뚫은 뒤 이번에는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득점을 도왔다. 로마는 8강에서 메시를 막았던 자신감을 무기로 “대인방어 대신 팀워크로 살라를 봉쇄하겠다”고 했지만 철저히 농락당하고 말았다. 경기 최우수선수(MVP)는 당연히 살라의 몫이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의 평점은 9점.
챔스 10골을 채운 살라는 호날두(15골)에 이어 득점 공동 2위(피르미누)를 달리고 있다. 6골의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8강 탈락으로 기회가 없다. 자연스럽게 살라와 호날두의 맞대결에 관심이 쏠린다. 레알 역시 4강에 올라 있어 둘이 결승에서 만날 수도 있다. 일단 살라 쪽은 확률이 높다.
이쯤 되자 세계축구 올해의 선수상인 발롱도르 수상 판도도 새 기류를 맞는 분위기다. 발롱도르는 최근 10년간 메시와 호날두가 5회씩 수상하며 정확히 양분해왔다. 2위에 메시나 호날두가 아닌 이름이 들어간 것도 2010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바르셀로나)가 마지막이었다. 아스널의 전설 이언 라이트는 “이 기세라면 살라가 발롱도르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골닷컴도 “메시와 호날두에게 새로운 발롱도르 라이벌이 생겼다. 리버풀이 챔스를 제패한다면 살라는 메시·호날두의 10년 독점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살라는 올 시즌 모든 경기에서 43골 13도움을 몰아치고 있다. 실제로 호날두(42골 8도움), 메시(40골 18도움)와 기록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유럽 전체 득점 1위. 발롱도르는 각국 기자 투표로 뽑으며 발표는 12월에 한다.
한편 리버풀은 살라가 교체돼 나간 뒤 2골을 내줘 다음달 3일 있을 2차전에 다소 부담을 안게 됐다. 로마는 8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에 1대4로 지고도 2차전 홈에서 3대0으로 승리,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4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썼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