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정부가 세계 처음으로 시범 도입한 기본소득제를 중단하면서 이 제도를 놓고 찬반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면 일반 시민들의 근로 의욕을 향상하고 복잡한 복지 체계를 단순화해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제 자체가 너무 허술하게 도입됐다고 지적한다. ‘국민이 일을 하게 만들고 싶으면 진짜 근로를 장려하는 세제를 만들라’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제 실험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후 이 정책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지급 대상을 늘리기 위한 사회보장국의 예산증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존 기본소득 지급도 올해 12월을 끝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 2017년 1월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며 시범도입 기간을 2년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사실상 실험이 실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핀란드 사회보장국은 “근로, 경력 향상을 위한 직업 훈련·교육 등 기본소득 도입에 의한 실제 효과를 판별할 수 없다”고 실험 중단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해 1월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제를 시행할 때의 목적이 아이러니하게도 ‘복지병’ 해소에 있음을 드러낸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기본소득 보장이 사람들을 더 게으르게 만들고 재정지출을 키울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핀란드 정부는 고용 여부와 무관하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줄 경우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일부러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핀란드인들은 실업 후 재교육 기간에 하루 최대 18유로까지 제공되는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일용직 일자리 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핀란드 정부는 또 기본소득 도입으로 연령·주택 유무 등 각종 명목에 따라 분리된 복지체계가 일원화되면 장기적으로 재정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약 60%를 차지하는 복지비용이 기본소득제 전면도입으로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기본소득에 힘입어 사업을 재개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간제 일자리 등 임시직 취업에만 몰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빈곤 해소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전면 시행하면 빈곤층에 집중된 복지예산이 전 계층에 분산돼 빈곤율이 11.4%에서 14.2%로 오히려 상승한다. 기본소득이 전면 도입되면 소득세를 30% 증액해야 한다는 OECD의 보고서가 나오는 등 재원확보 우려도 제기됐다.
OECD는 기본소득제는 너무 간단한 복지 대안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이 일을 하게 만들고 싶으면 단순히 돈을 똑같이 받게 만들지 말고 진짜 근로를 장려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책정된 금액은 매월 560유로(약 70만6,000원)로 핀란드 민간 평균 소득 3,500유로의 1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돈이면 침대 하나 딸린 셋방밖에 빌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빈곤 퇴치는 커녕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할 돈이어서 근로 장려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OECD는 “다양한 근로 연령에 분산된 혜택을 소득에 맞춰 조정하면 근로 장려는 물론 투명성까지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핀란드 정치권은 기본소득 대신 구직활동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는 실업체계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핀란드 의회는 최근 3개월 내 최소 18시간 동안 일하거나 직업훈련을 받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핀란드 의회는 ‘네거티브 소득세’를 검토하고 있다. 일정 소득을 넘어가는 사람에게 부과하는 소득세의 체계를 뒤집어 소득이 일정 소득에 못 미칠 경우 소득세 면제뿐 아니라 혜택을 주는 것이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