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영권 방어책 마련 시급하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엘리엇의 현대차 흔들기 사태
기업 성장 배제한 경영권 간섭
정부, 지주사 전환 강요 대신
차등 의결권 도입 등 서둘러야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 23일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동조세력 결집에 나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를 합병하고 완성차 회사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리하며 그 아래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등의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두라는 것이다. 지주회사 구조가 배당금 세액공제 비중이 높아 조세부담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먼저 지주회사 체제에 무슨 세금 혜택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지만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의 합병은 의사결정의 2원화로 완성차의 사업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델파이, 스웨덴의 오토리브, 프랑스의 포레시아 등 거대 글로벌 부품 업체들이 핵심 기술 사업과 기타 사업을 분사하고 고차원 자율주행 사업에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가자는 것이다. 또 현대차를 지주회사로 하고 그 아래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두라는 것은 비금융지주사가 금융계열사를 둘 수 없도록 하는 한국의 금산분리 정책에 위배돼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굳이 한다면 그룹 금융계열사들을 계열분리 해야 하는데 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및 현대카드는 자동차 할부금융에 특화돼 현대·기아차의 완성차 판매경쟁력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계열회사다. 엘리엇의 요구를 따르다 보면 구조 개편 장기화에 따른 거래 비용과 실행 위험 부담으로 필시 경쟁력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가면서까지 사업회사 체제로 가기로 한 것은 이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박을 받아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결국 지주회사 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현대·기아차 주식을 매집했는데 뜻밖에도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사업회사 체제’로 가기로 결정되면서 엘리엇이 기대했던 수익을 얻지 못하자 이런 주장을 꺼낸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엘리엇의 주장은 현대차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문이다.

엘리엇은 또 사외이사로 구성된 독립적 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외이사 수를 사내이사 수보다 많게 이사회를 재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현대차·기아차·모비스·글로비스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해 특수관계인 간 거래, 인수합병(M&A) 등의 주요 경영사항, 주요 자산(지분)의 취득·처분 등 중요한 경영사항에 대해 심의·의결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엘리엇의 요구는 이유 없다.

엘리엇은 내친김에 합병, 분할, 주식 교환, 주식 이전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을 요구했고 배당(순이익의 40~50%) 확대 및 자사주 전량 소각도 요구했다.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정관을 고쳐 집중투표로 이사를 선임하라고 했다. 이는 집중투표 의무화, 감사위원회 위원 분리 선임 등의 내용을 담아 3월 국회에 제출된 정부 상법 개정안을 활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집중투표는 기업 경영을 들여다보기 위해 지분이 적은 헤지펀드끼리 손잡고 특정 후보에게 몰표를 던져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사를 뽑겠다는 것이다. 대주주 의결권 제한은 감사위원인 이사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것을 확대 적용하라는 것이다. 대주주건 소액주주건 주주의 의결권 제한은 재산권 침해로 헌법상의 기본권 침해다. 배당 확대 요구도 회사의 미래는 알 바 아니고 오늘 다 나눠 갖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1조원의 자사주 소각도 이미 결정됐다.

엘리엇의 주장은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 경영권 간섭으로 당장 현대차의 순익을 빼가겠다는 의도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순환출자 해소나 상법 개정이 투기자본에 놀이터를 제공하는 것 외에 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주회사 전환 강요와 낡은 제도 도입 대신 차등 의결권 제도와 포이즌필 도입이 더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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