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지난달 의결권 행사 지침을 개정해 ‘집중투표제’를 적극 도입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주가치 제고 차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차(005380) 지배구조 개편에 반기를 든 엘리엇의 요구를 속수무책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29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16일 집중투표제 도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 지침안을 의결했다. 국민연금은 기존에도 집중투표제에 찬성했지만 개정안은 향후 상법 개정으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될 것에 대비해 집중투표제 찬성 내용을 명확히 했다. 현재 상법에는 기업이 집중투표제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가 규정됐지만 개별기업은 정관으로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의결권 지침이 강화되면 지난 23일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간 합병을 제안하면서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조항을 없애달라’고 요구한 데 대해 국민연금은 무조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시 ‘1주 1표’가 아니라 선임될 이사 수만큼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기금운용위는 한발 더 나아가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집중·분산해 행사하는 지침을 신설했다. 연기금 관계자는 “소수주주의 사외이사 선임에 힘을 보태려는 것이 국민연금의 의도지만 엘리엇 등 헤지펀드의 이익을 대변할 인물을 손쉽게 이사회에 밀어 넣을 수 있도록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 지분 1%가량으로 현대차그룹에 사외이사 추가 선임을 요구했는데 현대모비스 지분 9.82%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엘리엇 주장에 10배의 힘으로 동참하게 된 셈이다.
황인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장은 “의결권 지침 개정안만 본다면 국민연금이 현대차 사례에서 엘리엇이 주장한 집중투표제에 찬성하게 된다”며 “의결권 지침은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따르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