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 정상회담은 거의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한반도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20세기 냉전체제의 한 섬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유물이다. 최근 북한은 ‘핵확산 방지’라는 기존 국제질서의 근간을 무시하고 핵무장 완성을 추진하면서 전쟁 직전의 상황까지 다다랐다. 그런데 불과 몇 달 후 남북한 지도자가 일련의 드라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적인 화해와 관계 개선 조치에 합의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국민은 깊은 감동으로 정상회담 장면들을 지켜봤다. 우선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축하를 보낸다.
이러한 성공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많은 회의론 속에 이룩한 업적이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한반도 비핵화, 평화, 번영에 대한 희구가 남북한 지도자들의 언술에 담겨 있다는 것도 감지된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당연히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달성할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제 겨우 비핵화·평화·번영을 위한 초입 단계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자고 합의는 했지만 이번 ‘판문점 선언’은 남북한 자체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선언의 내용은 주로 남북관계의 개선과 긴장 완화, 신뢰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는 북한 비핵화의 문제, 남북 경제협력, 국제 대북제재의 완화, 정전체제의 전환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원칙론적 공감대는 가졌지만 구체화할 수는 없었다. 이는 미국의 입장 및 다른 강대국들의 동의와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북한의 열망을 좌절시키고 남북한의 이해가 상충할 수 있는 많은 내용이 존재한다.
모든 고리의 핵심은 북한이 핵을 과연 조기에 완전히 포기할 수 있는가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에 대해 아직도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북한의 제7기 3차 전원회의 결의안을 보면 미래의 핵에 대한 포기는 결심했어도 과거와 현재의 핵은 보유 의지가 강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가측성도 변수다. 미국 조야조차도 북미 정상회담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배제돼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이 이 과정에서 과연 순기능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미중은 이미 전략경쟁 단계에 들어서 있다.
문재인 정부와 외교안보 라인들은 판문점 선언을 성공시키기 위해 이러한 변수들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단번에 우리가 희망하는 바를 다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반드시 수호해야 할 기준선이 무엇인지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제는 ‘희망’과 ‘열정’을 넘어서 ‘신중’과 ‘전략적 사유’가 더더욱 요구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가장 간과하기 쉬운, 그러나 반드시 추진해야 할 것은 국방개혁이다. 모든 ‘운명의 장난’이 다가올 때 이에 대응해 싸울 준비가 돼 있는 군사 역량을 갖추는 일이다. 지난 어느 정부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역사적 사명이다. 이는 현 문재인 정부에 쏟아지는 회의의 시선, 그리고 만에 하나 존재할 수도 있는 남북 갈등의 재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한미동맹의 약화 가능성, 남북한 간의 군축협상, 국내 정치적 역학을 모두 고려한 최소한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향후 동북아시아 지형은 당장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해 현란한 정상회담들로 수가 놓일 것이다. 한국은 여기서 소위 말하는 ‘갑’이 아니다. 모든 것이 살얼음판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조야의 지혜와 역량들을 최대한 모으고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가면서 바지런하게 이들 국가와의 외교전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한다면 역사는 이번 판문점 선언이 한반도의 대전환점이었다고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