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1층 카페 오설록에는 가구디자이너 이광호 작가의 설치작품이 천장에서 드리워 자연친화적 이미지를 더해준다. /권욱기자
3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관 기념 전시회인 ‘Rafael Lozano-Hemmer: Decision Forest(라파엘 로자노헤머: 디시전 포레스트)전’이 열리고 있다./권욱기자
3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관 기념 전시회인 ‘Rafael Lozano-Hemmer: Decision Forest(라파엘 로자노헤머: 디시전 포레스트)전’이 열리고 있다./권욱기자
3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관 기념 전시회인 ‘Rafael Lozano-Hemmer: Decision Forest(라파엘 로자노헤머: 디시전 포레스트)전’이 열리고 있다./권욱기자
3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관 기념 전시회인 ‘Rafael Lozano-Hemmer: Decision Forest(라파엘 로자노헤머: 디시전 포레스트)전’이 열리고 있다./권욱기자
“아름다움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화장품은 문화상품입니다. 우리는 화장품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기업입니다. 세계와 소통하는 우리의 언어도 문화가 될 것입니다.”서경배(55·사진) 아모레퍼시픽(090430) 회장의 철학이다. 아름다움의 추구는 외모 가꾸기를 넘어 내적 풍요로움으로, 나아가 예술과 문화 전반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된다는 예술철학이다. 세계적 미술 잡지 ‘아트뉴스’는 서 회장을 “단순한 화장품 사업을 넘어 한국의 미와 문화를 알리는 데 역점을 둔다”는 설명과 함께 ‘세계 200대 컬렉터’로 꼽았다. 서 회장은 미국의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대표작 빨간색 ‘러브(LOVE)’가 1층 로비에 앙증맞게 놓여 있던 서울 용산구 한강로 옛 사옥을 지난 2012년 헐고 올해 초 지상 22층, 지하 7층 규모의 신사옥을 건립하면서 1층과 지하 1층의 약 3,300㎡ 공간에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을 마련했다.
정식 개관 이전 ‘파일럿 전시’ 형태로 올해 3월25일까지 연 소장품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된 데 이어 첫 기획전으로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개인전이 3일 공개됐다. 이 같은 대규모 대기업 산하 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2004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 이후 14년 만이다. 현재 관장 부재의 리움이 기획전 없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임을 감안하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국내 미술 지형도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서 회장의 ‘예술 사랑’ 뒤에는 고(故) 서성환(1924~2003) 태평양그룹 창업주가 있다. 미술관 입구에는 조각가 이영학이 빚은 창업주 두상이 놓여 있다. 차남인 서 회장은 형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이 금융과 건설 계열사를 승계할 때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을 물려받았다. 현재 5,000점에 이르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소장품은 창업주가 수집한 전통 여성 장신구와 녹차 관련 찻잔이 토대가 됐다. 용인의 옛 디아모레뮤지엄과 아버지의 정신을 두루 이어받은 서 회장은 “경영자가 되지 않았으면 미술평론가가 됐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현대미술에 대한 탁월한 감각과 안목을 겸비했다.
하지만 서 회장은 미술관 운영에 관해 조언조차 최소화하고 전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소장품 구입도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2팀으로 나뉜 학예실 내부 추천과 외부 자문회의를 거쳐 이뤄진다. 메세나 사업으로 진행하는 기업의 문화 후원에도 적극적이지만 애써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앞서 2008년에는 LA카운티현대미술관(LACMA)에 한국실을 설치하라며 30만달러를 기부했다. 외국의 대형 미술관에 속한 한국실이 우리 문화를 자랑스럽게 소개할 거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이후 2011년부터는 매년 20만달러씩 5년간 100만달러를 지원했다. 지난해에는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미술품을 전수조사하고 연구·보존처리를 지원하기 위해 약 50만파운드를 기부했다. 대영박물관은 연간 700만명이 방문하는 곳으로 1,500여점의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0년에 시작된 ‘설화문화전’은 한국 전통 공예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정체성으로 국내외에 자리매김했다. 2013년 시작한 ‘에이피맵(APMAP)’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젊은 작가들에게 대규모 야외 전시의 기회를 제공하고 전시지역도 오산·제주·용인·서울 등으로 옮겨가며 진행해 기업 내부와 미술계 전반에 신선한 자극이 됐다. ‘미장센 단편영화제’도 후원하고 있지만 기업 홍보를 위한 상업적 의도는 철저히 배제한다.
이에 대해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모레퍼시픽이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프레스티지 이미지가 필수적인데 미술관 전시를 통해 우리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연결시켜 의미를 만들어내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업철학과 연계하기에 ‘스마트 메세나’라 할 수 있다”면서 “일관성 있게 꾸준히 예술을 후원하면서도 상업적 의도나 후원자 개입을 자제하는 것도 미덕”이라고 말했다.
개관 기획전 ‘로자노헤머 개인전’에서 작가는 사람의 접근에 반응해 움직이는 인터랙티브 작품을 관객의 목소리·심장박동·지문·소지품·사진 등을 재료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관객 없이는 작동도 않고 온전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와 함께할 때 제품이 완성된다는 서 회장의 경영철학을 읽을 수 있다. 전승창 아모레퍼시픽미술관장은 “개관과 동시에 미술관은 대중성과 공공성을 갖는다”며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기업의 철학과 우리 미술관이 추구하는 방향성, 작가의 예술관이 공통 부분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포함해 신사옥의 정식 준공은 오는 6월15일로 예정됐다. 그때쯤이면 건물 외부에는 세계적인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설치작품도 완성되고 방문객 누구나 1층 로비에 설치된 이광호 작가의 의자에 앉아 예술을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