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적인 집시 여인 카르멘, 민화 드레스를 입다

서울시무용단 창작극 '카르멘' 안무가 제임스 전
발레부터 현대무용까지 조합
삼각구도 몸의 언어로 표현
나만의 카르멘 위해 신예 발탁
佛서 활동 양해일 디자이너 기용
민화 접목 의상에 한국의 미 담아

서울시무용단이 선보이는 창작무용극 ‘카르멘’의 의상은 민화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양해일이 맡았다.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조르주 비제를 세계에 알린 오페라 ‘카르멘’은 오페라는 물론 발레와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숱하게 변주됐다. 프랑스 작곡가의 재해석을 통해 구현된 스페인 색채에 팜므파탈의 상징 카르멘과 카르멘을 사랑한 나머지 질투에 눈이 멀고 마는 호세, 호세만을 사랑하는 약혼녀 미카엘라 등 극적인 인물 구도까지 더해져 ‘카르멘’은 가장 대중적인 오페라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각인돼 있다. 가장 대중적이라는 의미는 안무가들에겐 독이 되기도 한다. 대중의 선입견이 창작과 실험의 여지를 좁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창작발레의 선구자 제임스 전과 한국무용이 만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일 서울 광화문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제임스 전은 음식과 재료 이야기로 운을 뗐다.

“이번 ‘카르멘’은 그야말로 제임스 전이 한국무용을 재료로 차린 밥상이에요. 발레부터 현대무용까지 내 안의 다양한 무용 소스에 한달 간의 워크숍을 통해 단원들이 보여준 몸짓을 버무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음식을 완성한 거죠.”

이번 작품의 특징은 비제 오페라의 정수를 살리면서도 기존의 스토리를 과감하게 각색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의 중심축을 남자 주인공 호세로 바꾸고 노랫말로만 표현됐던 장면들을 몸의 언어로 충실하게 표현, 개연성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특히 결말을 비틀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과 이야기가 맞닿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보통의 카르멘은 카르멘과 호세의 갈등구도만 부각시켰다면 이번 무대는 세 주인공의 삼각구도를 몸의 언어로 표현하는데 집중했다”며 “호세의 심경 변화를 중심으로 극을 전개하는데 결말 부분은 관객들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 모던 창작발레의 선구자로 꼽히는 제임스 전이 서울시무용단의 창작무용극 ‘카르멘’의 안무를 맡았다.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제임스 전이 그리는 이번 무대의 정수는 춤이나 의상, 음악 등 각각의 요소가 아니라 움직이는 그림을 감상하듯 완성되는 미장센이다. 특히 파리에서 활동하는 의상 디자이너 양해일을 기용한 것은 신의 한수로 꼽힌다. 양해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을 디자인하며 화제를 모았던 인물로 민화를 접목한 세련된 의상으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 양해일은 민화 특유의 생동하는 색상과 화려한 무늬를 더해 ‘한국의 미’를 보여줄 계획이다.

이번 무대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신예 무용수들을 주역급으로 기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실력 있는 무용수들이 많았던 탓에 한 달 이상 다섯 명의 후보를 두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고민 끝에 그는 흰 도화지처럼 그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신예 무용수 오정윤과 김지은을 카르멘으로 캐스팅했다.

“매일 같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예 무용수를 보면서 나만의 카르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오정윤이 적극적인 카르멘이라면 김지은은 여성스러운 카르멘이죠. 기존 작품에서 주인공만 맡았던 무용수들 3명은 카르멘 역을 후배들에게 내줬지만 이번 작품에서 카르멘의 친구로 등장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제임스 전은 스스로를 발레 안무가라는 테두리에 가두지 않는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한국무용극을 다시 창작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췄다.

“한국무용이 세계화되려면 한복을 입고 우리 고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만의 독특한 언어와 춤사위를 보여주되 세계에 통하는 소재를 찾아야죠. 이번 ‘카르멘’이 그 가능성을 알리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9~1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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