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제도 있으면 뭐 합니까. 쓸 수가 없는데요. 강제를 하든지 법을 안 지키면 영업정지를 시키든지 해야 합니다”
3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터디 카페에선 저출산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참여자는 교수나 연구원 같은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20~30대 남녀 10여명. 정부가 저출산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담고자 만든 자리였다.
서로 모르는 사이인 참석자들은 처음엔 어색한 듯 입을 쉽게 떼지 않았다. 하지만 한두명이 솔직히 고민을 토로하자 저마다 평소 갖고 있던 생각, 불만, 철학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30대 남성 전모씨는 대출 지원·주거비·세금 혜택·장학금 등 지원이 세 자녀 이상 다자녀 가구에 집중된 정부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위에 얘기 들어보면 첫 아이가 제일 돈도 많이 들고 키우기 힘들다고 하더라”며 “첫째부터 제대로 지원을 보장해줘야 정책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결혼한 후에야 지원할 게 아니라 미혼 청년들에 대한 지원이 많아져야 한다는 게 전씨의 생각이다. 그는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이 돼야 결혼을 할 텐데 결혼한 부부에게만 지원을 집중하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제도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은 많은 토론자가 공감했다. 한 참석자는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도 공무원이나 지키지 중소기업은 꿈도 못 꾼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만 돼 있는 법은 법이 아니다”라며 “육아휴직을 강제를 시키든지 법을 지키지 않으면 엄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참석자도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법을 어겼을 때 처벌을 제대로 안 하고 형량도 너무 낮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에 편중된 육아 부담도 문제로 지적됐다. 30대 여성 윤모씨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박육아, 독박휴가가 정말 문제”라며 “남녀가 사랑해서 같이 아이를 낳았으면 육아도 공평하게 할 수 있게 제도부터 분위기까지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남성 토론자도 “아이를 보기 싫어서 토요일에 일부러 직장에 나온다는 유부남도 봤다”며 “육아는 여자가 한다는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부족하다는 의견에도 많은 참석자들이 맞장구를 쳤다. 아이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으니까 ‘학원 뺑뺑이’를 시키고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 오랫동안 맡기는 현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대폭 늘리고 직장어린이집 의무 설치 대상을 확대하거나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 대한 지원을 높여야 한다는 등의 대안이 제시됐다.
장시간 근로 문화도 저출산을 부추기는 이유로 꼽혔다. 한 토론자는 “새벽 3시까지 일하고 아침 7시에 출근해야 한다거나 얼마 전 노동절도 안 쉬는 사람도 많던데 이런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국장은 “저출산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말씀 주신 내용들을 잘 검토해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정책을 펴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