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이라 지칭할 만큼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에도 봄이 찾아왔다. 남북에 이어 북미 대화가 시작됐고 중국,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다자외교의 토대가 다시 마련됐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남한 정부가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이르다. 운전대를 쥔 만큼 책임과 역할도 크다. 가장 대중적인 역사저술가로 꼽히는 박영규가 신간 ‘조선전쟁실록’을 통해 500년에 걸친 유례 없는 기간 동안 전란과 평화를 반복하며 살아남은 비결을 묻는 이유다.
역사를 민족적 자긍심의 재료로 쓰는 이들에게 선조는 가장 인기 없는 조선의 군주 중 하나다. 궁궐을 버리고 평양성으로 몽진한 선조의 행위는 백성을 다스려야 할 임금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비굴하고 비겁한 짓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저자는 선조의 피란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 일본 정예군 16만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조선에서, 선조가 도성 수성에 나섰다면 조선 땅 전체를 빼앗겼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 근거가 인조 즉위 초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다. 당시 조선엔 청의 침입에 대비할 만큼 충분한 군사력과 물자가 없었다. 그러나 인조는 명분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켰고 왕족과 백성이 타국으로 끌려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결국 500년 조선사를 통해 저자가 얻은 교훈은 전쟁을 앞두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것, 나보다 강한 상대가 섬길 것을 요구하면 머리를 숙이고, 영토를 빼앗고 백성을 차지하려 한다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의 힘은 승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조선이 남긴 오래된 미래다. 1만3,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