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한 소년이 지난 4월23일(현지시간) 뉴델리 쓰레기 매립장 위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수십년 동안 전 세계 쓰레기의 절반이 버려진 ‘세계의 쓰레기통’이 올해부터 닫히기 시작하면서 각국에 ‘쓰레기 대란’ 비상이 걸렸다. 미국과 유럽·일본·한국 등지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수입해온 중국이 올 초부터 플라스틱과 종이 등 24가지 고체 폐기물 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최근 폐전자제품과 페트병 등 32가지의 추가 수입 중단 폐기물 품목을 발표하면서 수백만톤의 쓰레기가 갈 곳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가뜩이나 골치를 앓아온 각국은 갑작스레 폐기물 수출길이 막혀 ‘쓰레기와의 사투’로 내몰렸다.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하고 쓰레기를 수출할 만한 대체지 물색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지만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한 세계를 뒤덮는 쓰레기 대란을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세계에서 발생한 고체 쓰레기는 13억톤에 달했다. 지구상의 모든 인구가 저마다 매일 1.2㎏의 쓰레기를 배출했다는 의미다. 갈수록 늘어나는 인구와 도시화 진척 속도를 고려하면 오는 2025년 연간 배출량은 22억톤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마다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이 태평양 일대에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 생겨났다. 국제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등록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 섬의 면적은 총 160만㎢, 무게는 7만9,000톤으로 통학버스 6,500대를 합친 규모로 파악됐다. 이는 기존 학계 추정치 대비 최대 16배에 달하는 수치다. 2016년 비영리기구인 해양정화협회(Ocean conservancy)가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 각국 연안에서 수거한 쓰레기는 1,384만여종, 무게로는 8,346톤에 달했다.
그동안 쓰레기 증가 원인으로 일회용품과 산업폐기물·음식물 등이 꼽혀왔지만 최근에는 전자기기 보급 확대가 주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부터 태블릿PC·전자책 등 새로운 정보통신(IT) 기기가 보급되면서 제품 제작에 쓰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 산하기관인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14년 IT 폐기물(e-waste) 배출량은 4,180만톤으로 2010년 대비 25%나 늘었으며 올해에는 5,000만톤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재활용 능력이 부족한 아프리카의 경우 케냐에서 해마다 컴퓨터·모니터·프린터·휴대폰·배터리 등에서 나오는 IT 폐기물만 평균 3,000톤에 달한다.
쓰레기는 단순히 처리 문제를 넘어 인류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UNEP의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음식물을 먹거나 재활용품을 팔아 생계를 잇는 빈민이 1,5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 50개에 달하는 초대형 쓰레기 매립지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는 인구는 6,400만명에 달한다. 2015년 중국 선전에서는 쓰레기 더미가 붕괴돼 최소 6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으며 지난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는 최소 115명이 사망했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는 145개 가옥이 쓰레기 더미에 매몰되기도 했다.
한 필리핀 주민이 지난 4월25일(현지시간) 보라카이섬 매립장에서 플라스틱병을 골라 담고 있다. /AFP연합뉴스
멕시코 주민들이 지난 2일(현지시간)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갑작스러운 쓰레기 수입 중단 결정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쓰레기 문제에 둔감했던 세계 각국에 경고음을 울렸다. 중국이 그동안 수입해온 쓰레기는 연간 약 5,000만톤, 폐플라스틱류 수입량만 한 해 최대 900만톤에 달했다. 올 초 조치 시행으로 올 1·4분기 중국의 쓰레기 수입이 56% 급감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수출만 믿고 마구잡이로 소비하고 버려온 쓰레기가 눈앞에서 쌓이기 시작하자 각국이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에 마침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뉴욕주는 최근 주 전체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2016년 캘리포니아주가 처음으로 주 전체에 일부 예외품목을 제외한 비닐봉지 사용 금지법을 승인한 데 이어 미국에서는 뉴욕이 두 번째로 관련 법안 도입에 나선 것이다. 한 해에만 85억개의 빨대가 버려지는 등 플라스틱 처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한 영국은 플라스틱 빨대와 면봉 판매를 전면 금지할 방침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대체 가능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2042년까지 모두 없애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밖에 칠레 정부도 전국적으로 쇼핑용 비닐봉투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 마련에 나섰으며 네슬레·유니레버 등 다국적 기업들은 2025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지를 재생 가능한 대체재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심각한 폐기물 문제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선진국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카메룬·말리·탄자니아·우간다·에티오피아에 이어 케냐도 6개월 전부터 비닐봉투 사용 금지 행렬에 동참했다. 선진국에 비해 쓰레기 배출량이 훨씬 적지만 쓰레기 처리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내린 조치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한 필리핀의 보라카이섬은 아예 섬을 폐쇄해 버렸다. 한 해 200만명이 찾는 유명 휴양지인 보라카이섬이 관광수입 손실에도 불구하고 지난달부터 6개월 동안 관광객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은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와 열악한 하수시설 때문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보라카이가 시궁창이 됐다”며 이 섬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대표적인 신혼여행지 푸껫의 나라 태국도 다음달부터 넉 달간 피피섬의 마야베이를 폐쇄한다. 환경오염으로 태국의 산호초 75%가 사라진 탓에 내린 결정이다.
비영리조직 국제기후정책센터(ICCG)는 필리핀 마닐라가 하루 8,000톤의 쓰레기를 배출하는 세계 최악의 도시지만 정부가 수년간 쓰레기를 수거하거나 국민들을 상대로 재활용 교육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소개하면서 “개발도상국에는 쓰레기를 통제할 만한 조직적인 수단이 마땅찮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 등이 중국을 대신할 쓰레기 수입국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이들의 수용 능력이 중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만큼 전 세계의 쓰레기와의 싸움은 앞으로 점차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배출량을 줄이는 근본 대책 없이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얘기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의 쓰레기 수입 대체지가 될 수 없다”며 “결국 전 세계가 자신들의 나라에 쓰레기를 파묻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