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대법원에 전화를 걸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57·사법연수원 17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을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변호사와 판사 등 법조계는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4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청와대 관계자가 대법원에 전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법원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국민청원 사실 자체만을 전달한 것이 직접적인 외압행사는 아니라고 해도 개별 사건마다 국민청원을 모두 법원에 전달할 경우 법원의 판결은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법원은 다른 국가기관 뿐만 아니라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며 “사법부 독립은 엄정하게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법 제106조 1항에 따르면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 법관은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파면될 수 있다. 판결에 일부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법관의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
판사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청와대가 국민청원을 전달한 것은 전형적인 인기영합주의적 행태로 좌시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 등 다른 국가에도 국민청원제도가 있으나 사법부의 판결과 관련해서는 청원대상 될 수 없다고 청원단계에서부터 자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사법부의 독립 보장이 흔들리면 유력정치인이나 기업가 관련 판결에 여론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기록으로 남는 판결의 특성상, 정권에 따라 판사 재임용 시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고 주장한다.
앞선 지난 2월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이 23만 건에 이르자 이승련(53·연수원 20기)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청원 내용을 전달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