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있는 GS 칼텍스 여수공장에서 근로자가 야간 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력근로시간제만 해도 완화가 필요하다는 기업 민원이 계속됐지만 (정부가 손을 놓으면서) 달라진 게 없어요. 기업으로서는 인력 운영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안 뽑자니 일이 안되고 특정 시기만을 위해 사람을 쓰기도 부담이 큽니다. 인원 부족에도 현 인력을 고수하는 기업에서는 일이 몰리는 부서와 그렇지 않은 곳 간에 위화감도 생기고 있어요.”(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
주당 52시간 근로시간 시행이 오는 7월(300인 이상 사업장)로 다가오면서 부작용과 폐단도 여러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일률적 시행으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사측은 인력 충원에 따른 비용 부담은 기본이고 임금 감소 폭과 업무 로드가 큰 부서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 직원도 불만이 크다. 생산직들은 특근·야근 감소로 손에 쥐는 월급이 줄어 반발하고 있고 연구개발(R&D) 부서 등 사무직들은 눈칫밥 먹어가며 일할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와 임금을 나누자는 애초 취지가 시작도 하기 전에 퇴색되는 분위기다.
GS칼텍스는 ‘인력 충원’이라는 해법을 꺼냈지만 고육책에 가깝다. 2~3년에 한번꼴로 돌아오는 2개월 정도의 정기 보수 기간에 일손이 달려 인력을 고용하지만 평상시 활용 방안이 마땅하지 않아서다. 현재 구도대로면 선발 인원은 ‘잉여 인력’이 될 공산이 농후하다. 정유 업계의 한 임원은 “현재 4조 3교대로 인력을 운용하고 있어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평상시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문제는 정기 보수 기간인데 이때 근무시간이 주당 70~80시간에 육박해 현재 고용한 인력 규모로는 근로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3개월마다 주당 52시간에 맞추도록 돼 있는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6개월 정도로만 늘려도 인원 충원 없이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만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열린 대기업 간담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수준의 견해를 제시해 기업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정유 업계 근로자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이 넘을 정도로 높다는 점도 기업 근심을 키우는 요인이다. 더구나 새로 충원된 인력이 숙련공이 되기까지는 10년은 족히 걸린다. 한 정유사 고위 관계자는 “정유플랜트 오퍼레이터는 초과근무 감소에 따른 월급 감소로 불만이고, 경영진은 불필요한 인력 고용으로 애로가 크다”며 “탄력근로제의 보완이 없을 경우 SK에너지·S-OIL·현대오일뱅크 등도 GS칼텍스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올여름 성수기 시즌을 앞둔 가전 업계도 근심하기는 마찬가지다. TV·에어컨 등 상당수 가전이 연중 최대 대목을 맞아 일손이 달리는 상황에 직면할 텐데 대처가 마땅치 않다. 한 대형 가전 업체의 관계자는 “수요 폭발로 일부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탄력근로시간제만 손을 보면 숨통이 트일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기업 조직 관리에 구멍이 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주당 52시간 시행에 따른 여파가 한 기업 내에서도 천차만별로 나타나면서 유불리에 따른 위화감이 형성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주당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하고 있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시범 실시로 인한 시뮬레이션 결과) 월급이 많게는 50만~100만원 가까이 줄어들게 된 생산직의 불만이 물밑에서 끓고 있다”며 “하반기가 되면 생산직 노동자부터 일률적인 주당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따른 집단 반발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른 기업의 한 임원은 “전체 생산직 근로자의 30~40% 정도가 월급이 크게는 10~15%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임금 감소분이 큰 사업장 중심으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의 한 임원은 “생산직은 월급의 감소 정도 등에 따라, 사무직은 실제 업무량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노조가 강성인 곳에서는 올해 임단협에서 골머리를 앓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한국적 현실을 자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 대기업 실무자는 “(기업들이) 형식적으로나마 주당 52시간을 준수하기는 하겠지만 업무량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여건상 지키기 어려운 내용을 법으로 만들어놓고 노사가 암묵적으로 편법과 탈법을 자행하는 꼴”이라고 푸념했다.
/이상훈·박성호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