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우리 머릿속의 장벽

박태준 건설부동산부장
극심한 '오스탤지어' 겪은 獨처럼
남북 통합에도 지난한 과정 남아
한반도 평화 분위기 번지는 지금
구성원 '거부감'부터 불식시켜야


길은 막혔고 별로 할 얘기도 없었다. 심심했던 차에 아직 20대인 후배에게 물었다. 통일에 대한 생각이 어떠냐고. 후배는 불안하다고 했다. 무엇이 불안하냐고 다시 물었다. 후배는 말했다. “북한 사람들과 또 경쟁하게 될 거 같아서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의 감격스러운 첫 골도 어쩌면, ‘왜 우리 국가대표들의 자리를 북한 선수들에게 내줘야 하냐’고 흥분했던 그들의 화를 풀어주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렇게 살아도 다수는 여전히 루저인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통일이 새로운 경쟁의 시작으로 먼저 다가온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날 한 기업의 대표를 만났다. 통일이 대화 주제가 되자 그는 탈북 청소년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탈북 청소년 중에는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다시 북으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한에서는 너무 치열하게 살아야 하니까 힘들대요. 이쪽 생활에 적응을 못 하고 있는 거죠.”

처음에는 기회의 땅이었을지 모를 남쪽 나라지만 그들이 넘어야 할 체제의 벽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높다는 얘기다.


우리는 요즘 통일을 이야기한다. 4월2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 남북한 정상들의 진지한 대화를 지켜보면서 변화의 기대를 갖게 됐다. 그리고 이제 곧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가 결국 만나 담판에 성공한다면, 합의서에 사인을 하고 엄지를 치켜세운다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환경의 한반도에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의문이 든다. 남과 북이 70년 가까이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잘 살아질 수 있을까. 통일의 주역이 될 청년들은 새로운 경쟁자가 불안하고 한편에서는 그 경쟁 자체를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이 현실인데 말이다.

1989년 통일한 독일은 2000년대 초반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경제위기가 최악에 달했기 때문이다. 2005년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0.9%에 그쳤다. 11%가 넘는 실업률에 실업자는 520만명에 달했다. 통일 초기 반짝했던 독일의 경제 성장이 심각한 침체에 빠졌던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통일 후 동독에 있던 기업의 도산과 이에 따른 대량 실직, 서독으로의 인구 이동 가속화 등이 독일 경제의 악순환을 야기했다.

경제 통합의 부작용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사회 통합의 지연에 있었다. 옛 동독 사람들은 통일 후에도 통일 국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독일의 시사잡지 슈피겔이 1995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동독 주민의 67%가 “장벽은 사라졌으나 머릿속의 장벽은 더 높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 무렵 옛 동독 지역에서는 ‘오스탤지어(ostalgie)’ 현상이 나타났다.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ost)’와 ‘향수(nostalgie)’의 합성어로 옛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의미했다.

이제는 유럽의 최강자로 성장한 독일이 통일 과정에서 겪었던 시련은 분단 후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우리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다. 또 이제 막 대화가 시작된 지금 남과 북 모두 통일에 대한 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고 부산을 떠는 것도 성급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 ‘통일’을 떠올렸을 때 나도 모르게 높아지는 장벽을 스스로 거둬내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빠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빨갱이들에게 한두 번 속아본 게 아니야”라며 질색을 하는 어르신들의 불신과 “왜 내가 그 많은 통일 비용을 부담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곳저곳의 불만까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쌓아놓은, 지금도 쌓고 있는 머릿속의 장벽들은 한두 개가 아니다.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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