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아이들과 함께 전북 군산의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의병운동 코너를 둘러보던 아이가 묻기를 “아빠, 이 사람들은 왜 이름이 없어?”라는 것이 아닌가. 군산의 의병전쟁을 소개하는 코너에 의병부대원 10여명의 단체 사진이 있었는데 설명이 ‘이름 없는 민족의 의병들’이었다. 당연히 그분들에게 이름이 없었을 리가 없다. 이름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의병들’로 고쳐야 할 듯하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표현 중에 ‘구한말’이 있다. 구한말은 지금 대한민국이 아닌 과거 한국 시대를 의미한다. 즉 대한제국 시기다. 구한말이라는 표현이 일반화된 것은 대한제국의 황제국 용어를 의식적으로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던가 한다. 근대화를 이루지도 못하고 일본에 결국 망한 나라라는 비하 의식이 근저에 깔린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정부 정책이나 역사학계에서 대한제국이 일반화되고 있다. 서울시가 최근 중구 정동에 ‘대한제국의 길’을 만들고 도심재생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12일부터 1910년 8월29일까지 13년을 존속했다. 세상에 필연적이라는 것은 없다. 로마제국을 비롯해 프랑스·영국·중국·일본 등 동서고금에서 한때 망하지 않은 국가와 국민이 어디에 있나.
최근 ‘대한제국의 부활’이 중앙권력 및 민중이라는 두 측면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민중적 측면에서는 지난달 종로구 서린동에 세워진 전봉준 동상이 대표적이다.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포로로 잡혀 서울로 압송된 후 처형됐다. 동상은 지난달 24일 전봉준이 처형된 전옥서 자리인 종로 영풍문고 앞에 세워졌다.
서울 도심 동상 건립은 1895년 그가 순국한 지 무려 123년만이다. 평등과 자주독립을 밑으로부터 요구했다는 점에서 근대국가가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 국가로서의 대한제국을 부활시키려는 노력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 만들어진 시설이나 정책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다만 대한제국 복원 노력이 언저리에 머무는 것은 불만이다. 거리 이름을 붙이고 전시물을 늘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핵심은 ‘환구단’이다. 대한제국은 황제국으로 제천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환구단이라는 제단을 지금의 중구 소공동 도심에 만들었다. 국권 상실은 이 환구단도 망가뜨렸다.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1913년 조선총독부 직영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을 지으면서 시설 대부분을 잘라냈다. 환구단의 본단은 아예 사라지는 등 원래 크기의 5분의1 이하로 줄어들고 황궁우 등 몇 건물만 남아 있다.
대한민국의 ‘대한’의 근원이기도 한 대한제국의 재인식을 위해서는 환구단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선호텔 등은 다른 데로 옮기면 된다. 경복궁 복원을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을 단호하게 철거했듯이 말이다.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