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 핵협정은 일방적이며 재앙적이고 끔찍한 협상으로 애초 체결되지 말았어야 한다”면서 예고대로 “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서 “이 협정으로는 이란 핵폭탄을 막을 수가 없다”고 탈퇴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이 핵협정 탈퇴를 공식화하면서 지난 2016년부터 중단됐던 대이란 제재 조치도 복원된다. 미 재무부는 오는 12일로 대이란 제재 유예를 종료하고 앞으로 90~180일의 유예기간을 거쳐 제재 조치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당국의 결정에 이란 교역국과 거래기업들이 따를 수 있도록 최대 6개월의 이행기간을 준다는 것이다.
재무부 공개문서에 따르면 일단 올해 8월6일부터 이란 정부의 미 달러화 매입과 취득이 금지된다. 항공기, 금, 귀금속, 흑연, 금속 원자재, 석탄, 산업용 소프트웨어의 직간접 판매나 공급·운송도 금지된다. 이어 11월4일부터는 이란의 최대 외화벌이 수단인 원유 거래까지 제한한다. 석유수출기구(OPEC) 3위 산유국인 이란의 원유 수출길을 막는 조치다. 이란과 교역하는 ‘세컨더리’ 제재도 재개돼 제3국의 제재 동참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은 예고됐던 미국의 결정에 “주권 침해”라고 강력 반발하면서도 당장은 핵협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적 조약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면서도 “이란은 미국 없이 핵협정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이 다른 협정 당사국과의 후속 논의가 실패할 경우 수 주 내에 우라늄 농축을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역내 긴장감은 당분간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제약 없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며 이란이 핵협정을 탈퇴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들과 전직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플루토늄 생산용 아락 원자로를 복원하는 데까지는 최소 18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란 핵기술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1년 안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글로벌 경제가 입을 잠재적 타격이 문제다. 이란 제재로 원유 공급에 하루 평균 25만~35만배럴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와 유가 급등론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가 이란 제재 재개까지 최대 6개월의 유예기간을 뒀다는 이유로 이날 원유 가격은 2%대의 급락세를 보였지만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유가 강세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고유가,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경우 수출국에는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 제재 충격으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이란과 거래해온 제조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이날 핵협정 탈퇴와 관련해 “보잉과 에어버스의 대이란 수출 면허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보잉은 이란 아세만항공에 30억달러 규모의 737기 30대, 국적항공사인 이란항공에는 166억달러 상당에 이르는 항공기 80대를 공급하기로 계약한 바 있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보잉이 이번 결정으로 200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