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록펠러가의 그림사랑

지난 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자선경매에서 팔린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꽃바구니를 든 소녀’의 낙찰가가 무려 1억1,500만달러(약 1,240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3년 전 1억7,937만달러에 팔린 ‘알제의 연인들’에 이어 피카소 작품으로는 두 번째로 높은 경매가다.

높은 낙찰가 못지않게 경매위탁자 역시 화제가 됐다. 바로 록펠러가의 3대로 지난해 101세로 타계한 데이비드 록펠러다. 50년 전 그가 사들여 애지중지했던 작품이 사후 경매로 나오게 된 사연은 생전에 남긴 약속 때문이다. 13년 전 생일 때 자신이 죽으면 모아온 미술품들을 처분해 사회에 기부해달라던 약속이 지켜진 셈이다.

록펠러가의 기부와 메세나(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정신은 창업주인 존 D 록펠러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급 4달러짜리 노동자로 시작해 성공 신화를 일군 그는 한편으로는 정경유착과 무자비한 기업 인수, 노동자 탄압으로 ‘최고의 악덕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4대째 이어지고 있는 그의 기부 정신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기업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록펠러가의 평전인 ‘록펠러가 사람들’에서는 그가 4달러의 보잘것없는 주급에도 매번 75센트를 떼어내 소액기부모임에 냈으며 교회 주일학교에 5센트, 빈민구제활동에 10센트, 해외 선교활동에 10센트를 거르지 않고 후원했다고 한다.


록펠러 가문의 그림 사랑에서는 애비 앨드리치 록펠러를 빼놓을 수 없다. 록펠러 2세의 부인인 그는 남편과 함께 수많은 작품을 사들여 미술관에 기증하는 등 평생 미국 현대미술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1929년에는 미술관 건립을 위해 가족이 살던 집터까지 기증했다. 바로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MoMA)이 맨해튼 중심가에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MoMA에서 몇 블록 거리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조각 ‘비스 기둥(Bis Pole)’은 록펠러 2세 부부가 아들의 죽음과 맞바꾼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을 구하러 뉴기니로 떠난 아들이 현지에서 실종된 후 끝내 돌아오지 못하자 부부는 이후 아들이 수집해온 미술품을 모두 주요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4대를 이어가며 기부와 메세나 활동으로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록펠러가의 전통은 우리 사회에서 잇따르고 있는 재벌 2·3세들의 일탈에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정두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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