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등에 발목 韓, 글로벌 성장둔화 속 제조업 하강 가팔라

경기지표·공장가동률 줄줄이 하락
최저임금 인상 등 고비용 고용정책에
OECD 韓경기선행지수 '100' 하회
이달 수출이 향후 경기 가늠자 될 듯


가정용 보안장치를 제조하는 중소기업 A사의 정모 대표는 최근 경기 불황이라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얼굴인식처럼 시장에서 인정받는 신기술을 개발해 성장세에 오르나 싶었지만 올 들어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지난해 500개 팔았다면 올해는 100개밖에 못 팔고 있다”며 “전반적인 경기 여건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 대표가 체감하는 경기 부진은 지표에서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내놓은 올 2월 우리나라의 경기선행지수는 99.8이다. 지난 1월(99.8)에 이어 또다시 100을 밑돌았다. 100 이하는 향후 경기가 나빠진다는 의미다.

물론 우리만 경기전망이 악화하는 것은 아니다. 유로 지역 19개 국가의 OECD 경기선행지수는 1월 100.5에서 2월 100.4로 내려갔다. 스위스 투자은행(IB) UBS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 1·4분기 들어 눈에 띄게 둔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로존의 경우 지난해 4·4분기 0.7%에서 올 1·4분기에는 0.4%로 성장률이 낮아졌으며 일본은 1.6%(연율 환산 기준)에서 -0.2%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미국 경제도 지난해 4·4분기 2.9%에서 올 1·4분기 2.3%로 성장 속도가 둔화했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3월 통계청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0.4로 기준점인 100을 간신히 넘겼지만 1월(100.8)과 2월(100.6) 연속으로 하락했다.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인 수출도 4월 -1.5%를 기록했다.


이렇다 보니 우리 경제가 일시적인 경기조정을 받느냐 하락세로 바뀐 것이냐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당장 정부는 경기선행지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모양새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3일 “선행지수는 최소 6개월은 두고 봐야 한다”며 “현재 경기 회복 국면을 이어가고 있으며 상황을 좀 더 길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상황은 좋지 않다. 3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3%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3월(69.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중 자동차와 조선 같은 주력산업의 침체는 심각하다. 3월 자동차 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5%나 감소했다. 조선업 생산은 2013년 5월 -11.9%를 기록하며 감소세로 전환한 후 5년 가까이 감소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1월(-9.2%)과 2월(-32.2%), 3월(-24.6%) 모두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이 침체하면서 철강 생산도 -2.7%를 나타냈다. 건설경기가 침체하면서 건설·건축자재 비중이 높은 금속가공 분야의 국내 공급은 1·4분기에만 -11.4%를 기록했다.

체감경기는 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광공업 전체 75개 업종에서 생산이 전달보다 감소한 업종은 55개에 달했다. 생산확산지수는 26.7로 50에 못 미쳤다. 확산지수가 50을 넘으면 생산이 늘어난 업종이, 50 미만이면 감소한 업종이 더 많다는 뜻이다. 광공업 생산확산지수는 지난해 11월 50.0을 기록한 후 5개월째 50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가 몸살을 앓던 2008년 2월부터 13개월 연속 50 이하를 기록한 후 최장 기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 쪽에 문제가 있다”며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등의 고비용 고용정책을 가져가고 있지만 이로 인해 기업들의 비용구조가 매우 나빠져 한국 스스로 경기를 일으키기는 어려운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5월 수출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4월의 경우 지난해 대규모의 해양 플랜트 수출(54억5,000만달러) 같은 일시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에 이달 수출이 어느 정도 회복되느냐가 향후 경기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라는 얘기다. 이달 10일까지 수출액은 139억1,8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2% 증가했다. 성 교수는 “주요국에 대한 수출을 늘려야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며 “이것마저 어려워진다면 전체적으로 경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반도체 추격과 미국의 통상 압박도 변수다. 중국은 하반기께 자국산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앞두고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과 별도로 통상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등에서 반도체 기술을 습득한 중국이 게임의 룰을 바꾸려 하고 있다”며 “중국과 미국의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우리 제품이 과거 2011년처럼 잘 팔려 글로벌 파이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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