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개관식이 열린 가운데 시위자들이 미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 경찰 및 국경수비대와 충돌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오른쪽 사진). /예루살렘·이스탄불=AP·AFP연합뉴스
미국의 주이스라엘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을 계기로 불거진 팔레스타인 시위 무장진압 과정에서 최소 58명이 사망하고 2,700여명이 부상하는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유혈충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에 반발하는 시위가 중동 각국으로 번지는 가운데 터키 정부는 가자지구 유혈사태를 ‘대학살’로 규정하며 주미국·주이스라엘대사관 외교관을 철수시키겠다며 강공에 나서는 등 미대사관 이전의 후폭풍이 중동의 상황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라크 총선에서는 반미와 반이란을 외치는 강경 민족주의 시아파가 사실상 승리를 확정 지어 가뜩이나 복잡한 중동 정세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나크바’(대재앙) 70주년인 1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시위자들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최루가스를 피하고 있다. /가자=로이터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dpa통신 등에 따르면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이날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팔레스타인 시위대 58명이 숨지고 2,77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일일 사망자로는 지난 2014년 7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이후 최대 규모다. 15일은 팔레스타인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동예루살렘을 빼앗긴 ‘나크바(대재앙)의 날’인데 이날 이스라엘군 독가스에 질식해 생후 8개월 된 아기까지 사망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파괴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려 수만명을 국경으로 보냈다”면서 “모든 국가는 국경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강경 대응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가자지구 분리장벽을 따라 벌어지는 유혈 참상은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에서는 가자지구의 유혈 진압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미국이 이스라엘 옹호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유엔 차원의 대응도 무산되고 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추진한 팔레스타인 유혈사태에 대한 성명에까지 반대하며 채택을 무산시켰다. 백악관은 “이 비극적 죽음의 책임은 전적으로 하마스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에 이집트·시리아·요르단 등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비판대열에 속속 동참하고 나섰다. 특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가자지구 유혈사태는 대학살”이라며 “미국과 이스라엘대사관에 파견한 외교관들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이 15일부터 오는 6월14일까지로 예고돼 하루 평균 1만~2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지 ‘템플마운트’를 찾을 경우 ‘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접국가인 이라크의 총선 결과도 중동 정세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2일 치러진 이라크 총선 예비집계 결과 강경 시아파 종교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주도하는 ‘행군자동맹’이 약 54석의 의석을 얻어 가장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이라크 18개주 중 6개주에서 선두를 차지했고 4개 주에서 2위에 올랐다. 외신들은 미국은 물론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내정개입에도 반대하는 알사드르가 정권을 잡을 경우 이라크 정세가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했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행군자동맹이 전체 329석 중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만큼 친이란 성향의 정복동맹과 친미 성향인 승리동맹 등 정치적 성향이 상이한 정당과 연합정부 구성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AFP통신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새로운 총리가 선출되고 연립정부가 꾸려지기 전까지 주요 정파가 상당 기간 협상을 벌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