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이 주미공사관 매입을 추진한 것은 1987년 협판내무부사 박정양을 초대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면서부터. 1888년 워싱턴DC의 ‘피셔하우스’라는 건물을 빌려 공사관을 개설한 지 1년 후 현재 위치로 옮겼고 2년 후인 1891년 12월1일 고종이 하사한 내탕금을 바탕으로 건물을 공식 매입했다. 백악관과는 불과 1.5㎞ 거리. 미국이 조선을 일본에 넘긴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모르고 ‘조미(朝美) 우호조약’만 철석같이 믿었던 대한제국으로서는 조선이 일본 등 열강의 침략을 받을 때 백악관과의 거리만큼 재빨리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리라.
실제로 고종과 박정양에게 주미공사관은 대한제국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4년 12월 미국 정부에 ‘(조미) 조약 정신에 따라 조선의 독립 유지에 전력해주기 바란다’며 도움을 요청한 고종의 밀지를 전한 이가 주미공사관의 미국인 고문이었고 재미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미국 정계 인사들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 이도 주미공사였다. 비록 그들이 들은 답은 냉담함이 전부였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겨 대한제국공사관으로의 기능을 잃을 때까지 17년간 자주와 독립을 향한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대한제국 주미공사관 청사가 22일 역사박물관으로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에 강탈당한 지 108년, 주미공사관이 처음 개설된 지 130년 만이다. 특히 이번 개관 기념식에는 을사늑약으로 국기 게양이 중단된 지 113년 만에 다시 태극기를 올린다고 하니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자주외교의 꿈이 서린 옛 주미공사관에서 강한 국가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껴보기 바란다.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