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금감원 독립, 누구로부터 인가

권구찬 논설위원
윤석헌, 짖지않는 '감시견' 비판
감독체제개편 전 독립성 무의미
정책· 감독 기능 분리되더라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이 관건


지난주 13대 금융검찰 수장에 취임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일성은 강렬했다. 윤 원장은 금감원이 국가위험관리의 중추인데도 외풍에 의해 흔들리고 정체성 혼란까지 겹쳐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금융감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신껏 시의적절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도 했다. 금감원이 정부기관도 민간기구도 아닌 반관반민 존재이기는 해도 독립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독립성 발언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김기식 전 원장이 거취 논란에 휩싸였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금융을 수술대에 올려야 할 분야로 꼽았던 것과 오버랩 돼서다. 문 대통령은 김 원장 낙마 사흘 전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용된 금감원장 3명 모두 비관료 출신이었다. 금융개혁은 모피아(재무관료+마피아)에 맡겨서는 될 것도 안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물러난 김 전 원장의 취임 일성도 금감원의 정체성 확립과 본연의 역할 강조에 있었다. 일련의 흐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늑대(김기식)를 피하려다 호랑이(윤석헌)를 만난 격”이라는 여권 일각의 평가가 허튼소리가 아닌 듯하다.

윤 원장은 교수 시절부터 금융위 해체론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금융위를 해체해 정책기능은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감독기능은 금감원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윤 원장이 말한 ‘외풍(실제로는 외부 이해관계자들로 언급함)’의 실체로 금융위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취임사는 그가 2015년 언론에 기고한 칼럼과 비교하면 행간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윤 원장은 ‘금감원 종합검사 폐지 유감’이라는 기고문에서 ‘금융개혁 과제로 장기적으로 종합검사를 축소· 폐지하겠다는 것이 감독쇄신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중략) 상위기구인 금융위의 정책 추진에 포획돼 감독기구 본연의 업무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고 썼다. 전 정부의 ‘혼연일체 식’ 금융개혁이 액셀레이터를 밟다 보니 브레이크인 감독의 무력화를 낳았다는 비판인 셈이다.

그렇다면 3년 전 금융개혁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말인가. 감독정책만 되돌아보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진웅섭 금감원장을 만나 ‘금융개혁 혼연일체’라고 쓰인 액자를 선물하고 ‘한 지붕 두 목소리’부터 줄여나갔다. 법률에 근거 없는 이른바 ‘창구 지도’나 ‘가이드라인’ 해소가 1순위였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했는데 근거도 없는 완력 행사는 감독 당국의 고질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세세한 사정까지는 모르겠으나 감독 부재로 인해 시장불안을 초래하거나 대규모 소비자의 피해를 낳았다는 기억은 별로 없다. 가계부채 문제만 하더라도 오롯이 3년 전 주택대출 규제완화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문제의 뿌리가 지속적 기준금리 인하와 유동성 잔치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워치독(watchdog)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짓지 않는 감시견은 존재 가치가 없다. 감독원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아야 함은 상식이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금융위 등 설치에 관한 법률상 금감원은 엄연히 금융위로부터 지휘 감독을 받게 돼 있다. 독립성 거론이 느닷없고 공허하게 들리는 연유는 여기에 있다. 금감원의 독립성 확보는 감독시스템 개편 이후 거론할 사안이지 지금은 꺼낼 때가 아니다. 설령 원톱 감독시스템이 확립되더라도 독립성은 어디까지나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한다.

감독기구 개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단없는 금융개혁이다. 혼연일체든 독립이든 개혁의 길은 다르지 않고 왕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실물로의 자금중개 기능을 활성화하고 약탈금융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일, 업역 간 칸막이를 허물어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는 것 등은 하나같이 중차대한 과제다. 금감원 독립성 이슈가 혼연일체 식 금융개혁의 적폐청산 프레임으로 활용된다면 최악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혹은 수장이 달라졌다 해서 개혁의 본질이 달라진다면 대한민국 금융은 ‘우간다’ 신세를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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