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2001년 5월 구미에 벽걸이 TV 대중화 시대를 앞당길 초대형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공장을 준공한 가운데 구자홍(왼쪽부터) 부회장, 허창수 LG전선 회장, 구본무 회장, 구승평 사장이 기념비를 제막하고 있다. /연합뉴스
LG그룹은 구인회-구자경-구본무로 이어지는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킨 탓에 2세 경영이 무르익었던 지난 1990년대부터 계열분리가 본격화된다. 첫 시작은 1996년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그룹에서 독립하면서부터다. 정부 정책에 따라 그룹에서 독립한 희성그룹은 현재 희성전자를 중심으로 희성금속·희성촉매 등을 계열사로 둔 연간 매출 3조원 이상을 거두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LG그룹은 LIG·LS(006260)·GS(078930)·LF그룹 등으로 분리됐지만 총자산 200조원이 넘는 범LG 기업들을 망라해 여전히 한국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희성에서 LF까지…10여년에 걸쳐 계열분리=1999년에는 구인회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고(故) 구철회 명예회장의 아들들이 LG화재(현 KB손해보험)를 중심으로 그룹에서 독립해 LG화재그룹을 세운다. LG화재그룹은 이후 LIG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방산기업인 LIG넥스원(079550)을 키워내는 한편 건설 등 다방면으로 확장하면서 한때 10대 그룹에도 포함됐지만 현재는 사세가 상당히 줄었다.
2003년에는 구태회 명예회장 3형제가 분가해 LS그룹을 세웠다. 분가할 때 LS전선·LS산전(010120)·LS니꼬동제련·LS엠트론·E1·예스코 등을 분할받았고 지금은 지주회사인 LS를 중심으로 4촌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05년에는 구인회 창업주와 함께 LG그룹을 태동시켰던 허씨 가문과 결별한다. LG그룹은 LG전자(066570)·LG디스플레이·LG화학(051910)·LG텔레콤 등을 맡았고 허씨 가문은 GS칼텍스와 GS건설(006360)·GS리테일(007070) 등을 이끌게 됐다. 2007년에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승 회장 가계가 LG패션을 중심으로 그룹에서 분리해 LF그룹을 세우면서 10년이 넘는 LG그룹의 계열분리는 마무리를 짓게 된다. 현재 LF는 구자승 회장의 아들인 구본걸·구본순·구본진 형제가 이끌고 있다. 이외에도 구인회 창업주의 아들인 구자학 회장의 아워홈, 구자도 회장의 ㈜LB, 구자일 회장의 일양화학, 구자극 회장의 엑사이엔씨 등도 모두 범LG가에 포함된다.
LIG·LS·GS·LF그룹 등 10여년에 걸쳐 계열분리
금융 外 전분야 망라…계열사간 협력관계 메가톤급
4세 경영으로 신사협정 점차 희석…무한경쟁 예고
◇벤처투자·식품·패션·전자·에너지…범LG가 떠받친 한국 경제=범LG 계열 기업들은 여전히 한국 경제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벤처투자부터 시작해 식품·소재·패션·유통·전자·에너지 등 금융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범 LG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실 LG그룹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만 해도 현대와 삼성에 이어 총자산 38조4,000억원, 계열사 49개를 거느린 재계 3위였다. 물론 지금도 LG그룹은 총자산 123조원, 계열사 70개로 국내 4위 그룹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분리된 범LG 계열 기업을 모두 합하면 자산규모는 200조원을 훌쩍 넘어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엇비슷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LG그룹 하나만 놓고 본다면 4대 그룹 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하지만 여전히 범LG 기업 간의 협력 관계를 본다면 경제력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희석된 신사협정…한발 다가온 4세 경영 ‘무한경쟁’ 예고=구본무 회장의 타계는 사실상 LG그룹의 3세 경영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그동안 유지됐던 범 LG 계열사의 협력 관계가 변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사실 범LG 계열은 기존 LG그룹에서 분리됐기 때문에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았다. 서로의 영역에는 침범하지 않기로 했다는 암묵적인 합의인 ‘신사협정’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LG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공식적인 신사협정은 없지만 암묵적인 합의는 있었을 수 있다”며 “하지만 그보다 끈끈한 동업자, 친족 관계였던 사람들이 굳이 경쟁자가 될 필요 없다는 공통된 인식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열분리가 시작된 지 20여년이 지나면서 일부 사업이 겹치거나 경쟁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GS가 ㈜쌍용을 인수한 사례가 있고 LIG그룹은 건영을 인수하면서 LIG건설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에는 GS칼텍스가 석유화학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LG화학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 세대의 끈끈함은 증손 대까지 내려가면 희석될 수밖에 없다”며 “그보다 지금의 경영 환경이 신사협정을 말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만큼 범LG가의 변화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