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설현, 남성팬의 배신자인가

설현/서울경제DB

걸그룹 AOA의 멤버 설현은 지난 주말 페미니스트를 조롱하거나 마찰을 빚은 동료 연예인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언팔로우(구독취소)했다. 그와 동시에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f(x)의 루나의 SNS를 팔로우(구독)했다. 이를 두고 그의 일부 팬들은 ‘설현마저 페미니스트라니 배신감이 든다’는 뜻을 밝히며 그녀의 SNS에 달려가 “페미니스트가 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설현의 언팔로우에 대해 일부 팬들 사이에서 “아이린에 이어 설현도 페미니스트라니!”라는 반응이 꽤 있다. 앞서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팬미팅에서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혀 곤욕을 치렀다. 분노한 팬들은 그녀의 사진을 자르고 불태웠다. 에이핑크의 손나은은 “GIRLS CAN DO ANYTHING”라 적힌 휴대전화 케이스를 사용하는 사진을 올렸다가 팬들이 반발하자 삭제했다.


이 정도면 사상검증이나 다름없다. 아이돌이 ‘페미니스트’면 안될 이유라도 있나. 이들도 한 사람의 시민이고 시민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우리나라 연예계에도 수많은 소셜테이너가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고, 아이돌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달라 심기가 불편할 수 있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과 나의 신념이 같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니 어느 정도 생각 차이는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아이돌에 대한 마음을 조용히 접으면 그만이다. 굳이 사진을 자르고 화형하며 개인 공간인 SNS에 들어가 욕설과 조롱까지 해야 하겠는가. 그건 지나친 오지랖이자 명예훼손이다.

아이돌은 태생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 미소와 애교는 소녀, 요정으로 소비되는 여자 아이돌의 숙명이다. 하지만 팬들에게 ‘오빠’라 외치며 미소를 보여줬던 이들이 페미니스트였다고 ‘배신’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 말대로라면 모든 이를 만족시킬 방법은 침묵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가 “여자에게 침묵은 훌륭한 장식물이 된다”고 말한 것은 2500년 전이다. 2018년의 현실은 분명 저 먼 옛날과는 다르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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