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012330)의 분할합병을 무산시킨 결정적인 역할은 의결권자문기구가 했다. 국내법에 대한 몰이해를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이미 기울어버린 주주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정작 캐스팅보트를 움켜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분할합병 대상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086280) 양쪽의 주주이기 때문에 반대할 요인이 크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나선 현대차그룹의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엘리엇이 몰고 온 태풍에 의결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국민연금이 머뭇거렸고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분할합병 후 시너지 효과나 배당금 확대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우군 확보에 실패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방안을 처음 발표할 때만 해도 국내 여론은 긍정적이었다. 일감 몰아주기를 해소하겠다는 목적이 뚜렷했고 편법을 쓰지 않고 세금 1조원을 내겠다는 통 큰 결정은 삼성그룹과 대비돼 두드러졌다. 양사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사태를 겪은 뒤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느냐’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적극성으로 세계 1위인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모비스 지분 1%를 무기로 반대에 나섰을 때 현대차그룹의 분위기가 느긋한 것은 그래서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전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분할합병 조건은 법을 지켰지만 현대모비스 투자자에 불리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고 국민연금을 자문하는 한국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도 반대를 이어가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코너에 몰렸다. 기관투자가들의 문제 제기도 잇따랐다. 국민연금은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한전 부지에 현대모비스가 지분 25%를 부담한 것을 문제 삼았다. 현대모비스가 분기배당을 실시한다고는 했지만 잉여현금흐름에 한전부지 투자분이 포함돼 있다면 실제 배당은 기대보다 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모비스는 한전 부지 투자분은 제외한다고 해명했다.
예상보다 기관투자가의 반응이 냉랭하자 현대모비스도 주주제안을 받아 검토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섰다. 여기서도 해외 기관투자가는 대규모 특별배당을 주장했으나 현대모비스는 끝까지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수소차 등 글로벌 1위 수준의 기술을 갖추고도 전략이 없어 사업화에 더뎠고 이는 의사결정이 관료주의적이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오랫동안 굳어져왔다”면서 “괜찮은 지배구조 안을 내놓고도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해 실패한 사례”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주식을 팔고 의결권 행사만 노렸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지금은 주주총회(5월 29일)전 한 달 동안 기존 주주가 지분을 팔아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명부확정기여서 엘리엇이 지분을 매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