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든 여성이든 50대를 전후해 갱년기 증상을 경험한다. 테스토스테론 또는 에스트로겐이라는 남성·여성호르몬 등이 감소해 성욕·성기능·체모 감소, 근력·집중력·자신감 저하, 안면홍조, 만성피로, 신경질·우울·불면증, 관절통·피부노화 등을 겪는다. 복부비만·고혈압·당뇨병과 심뇌혈관질환·골다공증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사망 위험도 높아진다. 남녀 간 갱년기 증상과 호르몬 보충요법에 대해 알아본다.
<남성갱년기>
“소설책을 볼 때도 집중이 잘 안 되고 읽고 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먹는 양도 비슷한데 배만 나오고 팔다리에 힘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멀쩡해 보이는 40~50대 남성들이 병원을 찾거나 주위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주 늘어놓는 푸념이다. 남성 갱년기의 대표적 증상들이다.
남성 갱년기 증상은 성욕감퇴·발기부전 등 성기능 감소에서 먼저 나타난다. 별다른 질환이 없는 남성의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3.5ng/㎖ 미만이면 남성 갱년기라고 하며 3.0ng/㎖ 이하면 호르몬 보충요법 같은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다. 남성호르몬 수치는 하루 중 변화가 있어 오전7~11시에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40대의 30%, 50대의 33%, 60대의 43%가 남성 갱년기 증상을 느끼고 있으며 10명 중 1명꼴로 갱년기 치료가 시급한 상태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3.0ng/㎖ 이하면 뼈가 약해지고 체지방 증가, 근육량·성생활 만족도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나 전반적인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30대 전후부터 해마다 약 1%씩 감소해 50~70대 남성의 30~50%에서 혈중 농도가 정상치를 밑돈다. 폐경기를 전후해 에스트로겐이 급감하는 여성과 달리 감소 속도가 더디다. 폐경으로 생식능력을 잃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갱년기 이후에도 생식능력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갱년기 증상의 개인차도 큰 편이다. 그래서 심각한 증상을 느끼지 못한 채 노화현상이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증상을 느끼는 시기도 여성에 비해 늦다.
다만 급성 질병이나 심한 당뇨·비만·스트레스·간질환, 만성 호흡기질환 등을 앓고 있으면 남성호르몬 감소폭이 커질 수 있다. 과도한 음주·흡연,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부족도 갱년기 증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떨어지는 폭이 클수록 성욕·성기능 감소뿐 아니라 당뇨병·고혈압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적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면 동맥경화증 같은 혈관질환이 생기기 쉬워지고 혈당을 떨어뜨리는 인슐린 작용이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성호르몬이 저하된 환자가 호르몬 보충요법을 받으면 혈당 개선, 몸에 이로운 고밀도지단백(HDL) 콜레스테롤의 혈중농도 증가, 체중·허리둘레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 골다공증 발생위험이 줄고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갱년기 증상이 심하고 남성호르몬 수치가 정상 이하라면 전립선비대증·전립선암 등 전립선 질환자를 제외하고는 호르몬 보충요법 등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 다만 호르몬 치료는 신체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이 필수다. 또 광범위한 신체검사 결과 다른 이상이 없어야 한다.
경윤수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성호르몬의 감소는 자연스러운 증상이지만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해 속도와 삶의 질 저하를 늦출 수 있다”며 “적절한 시기에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고 전립선질환 등에 대한 주기적인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장인호 중앙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전립선비대증·전립선암 환자는 호르몬 보충요법을 피해야 한다”며 “규칙적인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갱년기는 대개 40대 중후반부터 난소의 노화로 여성호르몬이 급감하고 월경주기와 생리 양이 불규칙해지면서 시작된다. 난자 배란·
<여성갱년기>
생리가 사라지는 폐경 이후 1년 정도까지 4~7년가량을 일컫는다.
갱년기 증상은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다. 10명 중 5~6명은 땀이 많아지고 안면홍조·빈맥 등 급성 여성호르몬 결핍 증상을, 3명 중 1명은 피로·우울·불안·수면장애, 기억력 감퇴, 요실금 등 좀 더 심한 증상을 겪는다. 관절통·두통·어지러움·유방통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따라서 갱년기 여성은 1~2년마다 유방 검진, 부인과 진찰, 필요 시 골밀도 검사 등을 받는 것이 좋다.
급성 결핍 증상은 폐경이 되기 1~2년 전부터 시작해 폐경 후 3~5년간 지속할 수 있다. 갱년기에는 비만 특히 복부비만으로 혈중 콜레스테롤 또는 중성지방 농도가 높아진 이상지질혈증과 고혈압·당뇨병 등의 위험이 커진다. 장기적으로는 골밀도 감소로 인한 골절,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뇌혈관질환과 치매 위험도 높아진다. 질이 건조해져 질염·가려움·성교통 등을 겪을 수도 있다.
갱년기 증상을 예방·완화하려면 식사량을 줄이되 녹황색 채소·생선 등의 섭취에 신경을 쓰고 일주일에 최소 3회, 회당 30분 이상 걷기·자전거·수영 같은 유산소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콩 특히 소화흡수가 잘 되는 두부나 발효된 된장·청국장은 식물 에스트로겐(이소플라본)이 풍부해 안면홍조 같은 증상을 완화·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꾸준한 운동은 증상 완화와 인지능력 유지, 만병의 근원인 복부비만과 심뇌혈관질환 예방 효과가 있다. 근력강화 운동, 요가·필라테스 등 유연성 운동은 부상 위험도 줄여준다.
안면홍조 증상은 불안·흥분·스트레스·더운 날씨와 급격한 외부 온도변화, 음식 등의 영향을 받는다. 체온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게 옷을 얇게 입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것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흡연은 폐경 증상을 악화시키고 폐경을 1.5년가량 앞당기므로 끊는 것이 좋다.
난소암 치료·예방 등을 위해 난소를 제거했거나 폐경이 임박한 갱년기에 급성 여성호르몬 결핍 증상으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여성호르몬 보충요법(폐경호르몬요법)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1~2년 안에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아 이후 호르몬제 용량을 줄이거나 복용을 중단하면 된다. 윤재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벼운 안면홍조·관절통 등 한두 가지 증상은 관련 약물치료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지만 여러 증상이 함께 나타나거나 증상이 심한 경우라면 여성호르몬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호르몬 치료는 자궁 등 비뇨생식기계 위축,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 예방에 도움이 된다. 피부의 탄력·두께를 유지하고 대장암 발생률을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대한폐경학회에 따르면 50대 여성에서 폐경호르몬요법은 심혈관질환 위험을 48%, 전체 사망을 30% 감소시킨다.
다만 장기간 호르몬 요법을 쓰면 유방암 등 발병 위험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윤 교수는 “5~10년 이내의 호르몬 요법으로 유방암 발생이 증가하는 정도는 크지 않다”며 “유방암 가족력이나 과거 유방질환이 없다면 여러 약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보다 여성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부작용 측면에서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렬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자궁내막암·유방암을 앓은 적이 있다면 재발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라면 호르몬제보다 골다공증 치료제를 쓰는 것이 낫다”고 했다.
여성호르몬 단독요법은 자궁내막암 발생률을 높이지만 황체호르몬과 함께 사용하면 발생률이 낮아진다. 반면 뇌경색 위험이 높아진다. 이에 대해 대한폐경학회는 “유방암 등 발암 위험이 과장되면서 적잖은 갱년기 여성들이 민간요법 등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며 “부작용은 주기적인 검진을 통해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로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