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사이드]'에르도안 리스크' 터키 경제 집어삼키나

■벼랑 끝 몰리는 리라화
리라화 달러당 4.65리라 연일 최저
피치, 통화정책 개입 경고 불구
에르도안 "금리는 모든악" 맞서
IMF 구제금융 신청 전망도 나와
대선까지 리라화 추락 계속될 듯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FP연합뉴스



터키 리라화 가치가 연일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치면서 아르헨티나에 이어 신흥시장의 ‘약한 고리’로 투자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를 웃돌 정도로 호조를 이어온 터키 경제가 최근 들어 급격한 통화가치 폭락과 외국인 자금 이탈에 시달리는 이유는 하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외신들과 국제신용평가사 등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정책, 일명 ‘에르도가노믹스(Erdoganomics)’가 터키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경고음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한 달 뒤로 다가온 터키 대선에서 재집권을 노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통화정책 개입 의지를 굽히지 않아 다음달 24일 대선 및 총선까지 리라화 추락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오후10시(한국시각) 기준 터키 리라화 가치는 달러당 4.88리라까지 밀리며 전날에 이어 또다시 사상 최저 기록을 갈아치웠다. 리라화는 지난 한 달 새 달러 대비 20% 이상 절하돼 세계 주요 17개 통화 중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하고 있다. 신흥국 전체 통화 중에서도 올 들어 24% 가까이 폭락한 아르헨티나 페소화 다음으로 하락폭이 크다.

리라화 추락은 전날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화정책 개입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면서 가속화됐다. 피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흔드는 노골적인 위협은 정책 결정 여건과 정책 효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화정책 개입에 대해 경고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민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에 대통령이 통화정책에서 영향을 발휘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며 통화정책 개입 확대를 거듭 시사한 데 대한 평가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에르도안의 독특한 경제관이 담긴 에르도가노믹스가 터키 자금이탈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지난 수개월간 심심치 않게 제기돼왔다. 터키는 10% 넘는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자금이탈 우려로 통화방어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금리 인상 압박이 고조되고 있지만 ‘금리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는 경제관이 확고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금리 인상에 공공연히 반대하고 나서며 리라화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터키 경제의 불안요인으로 꼽히는 만성적 경상적자도 최근 들어 악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의 무력충돌과 쿠데타 발발 등 터키의 정정불안으로 관광수입이 줄어든데다 경기부양을 위한 자원 수입 급증, 시리아에서의 군사작전 등으로 지난해 터키의 GDP 대비 경상적자 비율은 전년비 1.7%포인트나 치솟은 5.5%에 달해 리라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이 됐다.

일각에서는 터키가 아르헨티나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실제 터키의 단기 대외부채는 올 3월 기준 GDP의 20%인 1,810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외환보유액이 적은 국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터키는 대외부채의 상당 부분을 외화로 차입했기 때문에 자국 화폐가치가 떨어질수록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같은 ‘에르도안 리스크’가 적어도 다음달 선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에르도안은 저금리에 따른 리라화 약세가 달러 표시 부채 증대와 투자 위축 등의 부작용을 낳는 한편 가계의 빚 부담을 줄이고 청년층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경제성장을 유도해 선거 결과에 더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삭소방크 덴마크 헬레루프 지점의 외환전문가인 존 하디는 “리라화 약세는 최소한 선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비생산적인 시도를 한다면 그 후에도 악순환이 나타나면서 시장이 리라를 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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