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부탁..." 청탁 땐 큰코, 필기시험이 당락 좌우

■채용비리 이후 확바뀐 금융권 전형
올 KB국민 등 5대銀 2,700명 선발
주관적 점수 줄 수 있는 논술 폐지
신한·농협·IBK기업銀 NCS 도입
외부인사 면접으로 투명성 강조
IT 신설로 이공계까지 채용문 넓혀


은행들이 필기시험 부활 등 확 바뀐 채용전형을 통해 올해만 2,700명을 뽑는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 등 주요 5대 은행들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채용을 확대하면서 작년보다 500명 넘게 취업의 기회를 얻게 됐다. 상반기 350명을 뽑은 NH농협은행을 빼고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IBK기업은행은 상반기 전형을 진행 중이다. 하반기에도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공채를 이어갈 예정이어서 최종 입사까지는 여전히 ‘바늘 구멍’이기는 하지만 어느 때보다 채용 폭은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올해 채용전형은 은행권 채용비리 의혹으로 과거와 달리 필기시험이 부활하고, 채용청탁을 했다가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깐깐하게 진행되다 보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취준생 자녀를 둔 부모가 해당 은행에 근무하는 지인 임원 등을 통해 지나가는 소리라도 ‘누구를 잘 부탁한다’고 얘기했다가 뒷 탈이 생길 수 있으니 관련 언급 자체를 않는 게 좋다.

특히 남녀 성비를 조절해 채용하는 관행이 바뀔 수 있고, 블라인드 채용이 더 엄격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오로지 본인의 능력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채용비리 사태 이후 첫 채용이다 보니 결과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예측하기 어렵다”며 “조그만 지적도 나오지 않도록 아예 외부전문 기관 등에 맡기거나 면접에 외부인을 참여시키는 곳도 있어서 어떤 결과가 나올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법조계 등 여성들의 도약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은행 채용에서도 여성들의 합격률이 더 오를 수 있고, 오로지 객관적인 성적에 의해 당락이 좌우될 수 있어 서울 수도권 대학출신 합격률이 지방대에 비해 크게 상승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지금까지 은행들은 지방대학 졸업생을 우대해 왔지만 이것 마저 논란이 될 수 있어 각 은행들이 기존의 정책을 바꾸게 되면 채용결과도 이변의 연속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은행들이 이번에 적용하는 채용절차는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모범규준에 따른 것이다. 모범규준에는 필기시험 도입, 서류·면접 전형 시 외부인사 참여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통상 은행의 신입직원 채용 과정은 서류-필기-1차 실무자 면접-2차 임원 면접 순이다. 필기는 경제·금융 관련 상식을 주로 테스트하며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보는 곳도 있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높아져 평소 경제신문을 보며 경제나 금융시장의 이슈, 상식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게 인사 담당자의 공통된 조언이다.

주관적인 점수를 줄 수 있는 논술시험이 사라지고 객관적 문항으로 평가하는 것도 바뀐 트렌드다. 채용비리 문제로 인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당락을 점수로 판가름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면접은 블라인드 면접 형태여서 면접관들에게 나이, 지역, 학력 등의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 면접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에 맞으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리해 질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요구되는 ‘스펙’은 없지만 공인영어성적과 금융 자격증 등이 우대사항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은행들이 너도 나도 디지털 전환에 나서고 있어 빅데이터 분석이나 블록체인 등 정보기술(IT) 인력에 대한 선호도가 있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은행 별로 보면 KB국민은행의 경우 올해 600명을 채용한다. 다음달 초에 특성화고 졸업자를 대상으로 70명 정도 선발하고, 8월 공고 후 9월 중 신입행원 채용을 시작할 계획이다. KB는 그룹사 차원에서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 전문 인력을 100명 이상 선발할 방침이어서 이공계 취준생에게 오히려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필기에서 경제·금융·상식·국사(객관식)와 서술형 주관식 논술시험을 봤다. 다만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올해부터 논술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기업금융·자산관리(WM) △정보통신기술(ICT) △개인금융 분야에서 300명을 뽑는 상반기 공채전형이 시작됐다. 필기시험이 부활하고 직무적합도 면접이 신설된 게 특징이다. 채용절차는 서류전형→필기시험→직무적합도 면접→채용검진·인성검사→최종면접으로 진행된다. 필기는 NCS 직업기초능력 평가(75분)와 금융 관련 시사상식·경제지식 평가(40분)로 구성됐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열린 채용’을 전제로 하지만 공인영어성적, 금융 자격증 등을 소지한 지원자를 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7월에 250명, 10월에 300명을 채용한다. 지난 3월에 시작된 상반기 채용은 진행 중이며, 200명이 6월말 최종 합격한다. 10월 채용은 일반직 행원을 뽑고, 7월 채용은 250명 전부 개인금융서비스직이다. 채용절차는 서류전형→필기시험→1차 면접→2차 면접 순서다. 우리은행 필기전형에는 NCS가 없다. 필기시험은 경제·금융·일반상식(객관식 80문항+단답형10문항)과 적성검사(언어·수리·추리·시각적 사고 등 100문항)로 진행된다. 지난 상반기 필기에서는 전환사채, 리디노미네이션, 워라벨 같은 문제뿐 아니라 국제 경제, 외환보유 종류, 파생상품의 손익구조 같이 전문 지식을 묻는 문제도 다수 출제됐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아직 하반기 채용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 지난해 채용절차를 보면 서류전형→필기전형→1차 면접→임원 면접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필기시험은 사고방식, 개인성향, 지각, 언어부터 경제 및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가 출제됐다. 1차 면접은 행동사례(BEI)면접, 프리젠테이션(PT) 면접, 세일즈 면접, 협상 면접, 논술시험으로 진행됐다. 임원 면접은 자기소개서 내용에 기반한 인성 면접 위주로 진행되고 △지원 동기 △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문학 및 예술작품 △본인이 극복하고자 하는 성격 또는 인간관계 등이 주로 나오는 질문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단기간에 준비하기보다 평소 신문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관심을 갖고 준비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의 경우 상반기에 6급 신규직원 350명을 뽑았고 하반기는 아직 미정이다. 서류심사, 온라인인·적성, 필기시험, 면접 과정으로 이뤄지며 필기전형에서는 NCS를 본다. 농협은행 인사 관계자는 “농협은행은 스펙을 요구하지 않고 학력도 보지 않는다”면서 “전문 자격증이나 금융 관련 자격증은 참고사항 정도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IBK기업은행은 상반기 일반 금융영업 부문 125명, 디지털 분야 45명으로 나눠 전형을 진행 중이다. 채용절차는 서류전형→필기시험→역량면접→임원면접 순서다. 필기시험은 NCS와 더불어 직무수행능력평가로 경제나 사회 상식 등을 묻는 객관식 100문항이 출제된다. 논술은 올해 폐지됐다. 지난해 역량 면접은 1박2일로 진행돼 세일즈, 협상, 팀 프로젝트, 개인 프리젠테이션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해결능력, 논리력, 협상력, 창의성, 배려심 등을 두루 살폈다. 임원면접 시에는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인성 중심의 평가를 한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핀테크 등 금융시장의 변화에 맞게 ‘디지털 분야’를 신설해 이공계열과 자연계열 전공자로 지원 자격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황정원·손구민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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