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정부에선 리스크 크다" 글로벌 투자가, 삼성 투자 줄인다

몰아붙이기식 지배구조 개편 압박 불확실성 키워
사상최대 실적에도 삼성 계열사 보수적 투자 판단
외국인 투자가 올 삼성그룹株 순매도 1.9조 달해

정부의 ‘몰아붙이기식’ 지배구조 개편 압박이 삼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내에서 삼성그룹주(株) 비중 조정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압박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 삼성SDI-삼성물산 간 순환 출자고리 해석 뒤집기 등 삼성만을 겨냥한 각종 정책과 입법 시도들이 투자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현 정부가 삼성을 재벌 개혁의 집중 타깃으로 삼고 있어 삼성 이슈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정부의 일방통행식 압박이 국내 최대 기업의 투자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 투자 리스크 키우는 정부=28일 익명을 요구한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 불확실성만큼 큰 리스크는 없다”면서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삼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압박 정책이 투자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투자 포트폴리오 내에서 삼성그룹 계열사 비중을 축소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내부 운용 방침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면서도 “정부 정책으로 리스크가 확대된 것은 팩트”라며 비중 축소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가 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들에 대한 보수적 투자 판단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배구조 개편을 비롯해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삼성 때리기(bashing)’에 나선 현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삼성을 둘러싼 각종 정부 판단이 뒤바뀌거나 투자 가치가 훼손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생명이 전자 지분을 보유하는) 삼성의 현 지배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발언하며 삼성의 투자 가치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렸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라고 압박한 것인데 이는 삼성 계열사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생명의 전자 지분 보유는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면서 “향후 이뤄질 보험업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지만 공정거래위원장이 법적 근거 없이 특정 회사를 겨냥해 공개 발언한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이에 앞서서는 순환 출자고리 형성을 둘러싼 해석을 번복하며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404만주(5,800억원어치)를 추가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여기에 삼성은 수십 년 전 형성된 기존 순환 출자고리까지 해소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각각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처분해 순환 출자 구조를 완전히 끊으라는 것인데 이는 삼성물산 오버행(시장에 나올 수 있는 대량의 대기 매물 부담) 이슈로 작용하며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역시 금융당국이 지난 2015년 회계처리를 두고 ‘적절했다’고 내린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 발단이다. 이밖에 삼성물산 에버랜드 용인 부지 공시지가 판단,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결정 등 유독 삼성을 대상으로 한 정부 판단이 바뀐 뒤집힌 사례가 적지 않다.

◇외국인 올해 삼성그룹주(株) 1.9조 순매도=해외 투자자들의 삼성 주식 팔기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 중심부와는 거리가 있지만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최근 보유 중이던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6%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처분했다. 보유하고 있는 전체 물량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로 블랙록은 이를 통해 2,300억원 가량을 회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가들은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총 1조9,158억원어치의 삼성그룹 주식을 내다 팔았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22개(우선주 포함) 종목과 코스닥 상장사 1곳이 대상이다. 특히 지배구조 핵심에 있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매도세가 몰렸다. 삼성전자는 올해 누적으로 3조7,354억원을 순매도했고 삼성생명 역시 1,554억원을 순매도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권이 바뀐다고 기존 판단까지 뒤바뀌면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국내 기업에 투자하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