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스페셜’ 세월호가 바로 서기까지…‘누운 배, 94일의 기록’


28일 방송되는 MBC ‘MBC스페셜’에서는 ‘누운 배, 94일의 기록’ 편이 전파를 탄다.

2018년 5월 10일 오전 9시 누운 배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바다 속으로 가라 앉은지 1,486일만이었다. 2017년 10월 27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선체 직립 추진’ 안건을 의결했다. 목포 신항에 거치된 지 6개월만의 결정이었다. 초기에 당국은 객실 부위를 절단해 직립시킨 후 조사하는 방식을 검토했지만, 미수습자 유골 유실, 선체 변형 위험, 진상규명 근거 훼손 등 반대 여론은 거셌다. 누운 배로부터 네 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려웠고 위험했다. 미수습자 수색과 침몰 원인에 대한 선체조사가 다시 벽에 부딪혔다. 배를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눈과 귀가 한데 모아졌던 5월 10일. 누운 배가 다시 일어난 그날의 기록이자, 배를 일으키기 위해 분투했던 94일간의 땀과 이날이 있기까지 4년을 버텨 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 4만 8천톤 크레인이 1만 4천톤 배를 일으켜 세우는 지상최대의 작전

“울산에서 목포까지 232킬로미터를 19,400마리의 말이 3박 4일 동안 끌고 갑니다.”

- 1만톤 해상크레인 선장 강희복

5월 1일 울산 현대 중공업 앞 바다에 국내 최대 규모인 1만 톤급 해상 크레인이 출항했다. 길이 182M, 폭 70M, 무게 48,874톤에 달하는 세계최대 크레인 중 한 대.크레인의 목적지는 목포 신항. 바다가 허락한다면 5월 5일 아침에는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그곳에는 1만 4천톤으로 추정되는 ‘누운 배’가 기다리고 있다. 5월 5일 오후. 목포 신항 앞바다에 1만 톤 크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레인의 거대한 양팔에는 256줄의 와이어가 달려있다. 이 와이어를 배와 연결해 90도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선체를 일으킬 것이다. 파도와 바람까지 도와주어야 가능한 작전이다.

▲ 1만 7500명의 기술자들

“여기가 작년 4월 21일에 가장 먼저 수색했던 곳인데 뻘이 3, 4미터 차 있었어요. 그걸 사람 힘으로 수습해서 여기 협착부만 남았는데 눈앞에 교복이 있는데도 사람 힘으로 꺼낼 수가 없어요”

- 오승래 선체조사위원회 조사관

A데크 좌현 남학생 객실, 천장이 45도 밀고 들어와 바닥과 협착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체크무늬가 선명한 교복이 끼어 있었다. 어느 부모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죽은 자식의 물건, 일 년이 지나도록 주인을 찾아 줄 수가 없었다.

“기관구역에서 지난해 10월 미수습자 유해가 발견되었어요. 와류현상에 의해 미수습자 유해가 쓸려 내려왔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정일 선체조사위원회 사무처장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이 배 어딘가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관구역에 대한 수색 역시 배를 세우지 않고서는 진행할 수 없다. 세월호 직립은 세단계로 진행되었다. 바다와 90도로 누워있던 배를, 바다와 평행을 이루도록 돌려 뉘우고, 직립을 하기 위해 구조보강작업을 하고, 1만 톤 크레인으로 바로 세우는 것이다.

2월 21일 배가 바다를 향해 돌아누웠다. 선체 인양 이후에는 내부 수색과 선체 보존을 위해, 이동 후에는 직립 시 외부 충격 완화를 위해 2,950톤의 철제빔이 동원된 보강작업이 이루어졌고 하루 평균 185명, 연인원 1만 7500명의 기술자들이 동원되었다.

“작업장으로 출근하는 아침마다 (입구에 전시된 세월호 아이들) 사진을 봐요. 그러면 가슴이 먹먹하고.. 그 사진을 보면서 별이 돼 버렸다, 별이 되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와 닿던지.”

- 최태욱 반장 (건조1부)


“우리는 항시 엄숙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분들(유족들)은 항시 웃고 다니시더라고. 그래서 ‘저분들은 뭐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들의 웃음은 바로 눈물이었다는 것을 인자 와서 조금씩 느끼는 것 같습니다.”

- 박현재 기원 (건조1부)

“부모님들의 그 마음은 누구도 얘기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조금이나 보탬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상은 현장소장

▲ 영점의 회복

“아들이 사진으로 왔잖아요. 진짜 우리 아들이 와야 하는데.. 우리 아들이 집에 못 온 이유는 내가 알아야 하잖아”

- 건우(단원고 2학년 5반) 엄마

선체 직립이 진행되는 동안 세월호는 4주기를 맞았고, 합동분향소가 문을 닫았다. 아이들의 영정사진과 소지품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건우의 영정사진도 집으로 돌아왔다. 건우 방에는 건우가 쓰던 드럼과 베이스, 바다에서 건져 올린 건우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100만원이 넘는 드럼을, 40만원이라고 둘러대서 사주었던 건우 아빠는 그동안 혼잣말이 늘었다.

“이제 목포를 가거나 어디를 가거나 가면서 그냥 혼잣말로 얘기하고 가요. 뭐 야, 건우야, 아빠 지금 화장실 가고 싶은데 다음 휴게소 들릴까? 아니, 들리는 김에 밥이나 먹자. 넌 뭐 먹고 싶냐? 그런 얘기도 하고... 왜, 자식은 마음에 담는다고 가슴에 담는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 가슴에 담기조차도 미안해서 아직까지는.”

- 건우 아빠

5월 10일 오후 12시 10분, 세월호가 다시 섰다. 새벽 두시부터 일어나 바다 상황을 체크했던 크레인 선장의 굳은 어깨가 풀어졌고 하얗게 침이 말라 붙은 현장소장의 입가에 웃음이 피었다. 현장을 지키고 있던 유가족들의 젖은 눈꼬리에도 주름이 잡혔다.

네 번의 봄이 지나고 세월호가 다시 섰다. 건우엄마가 말했다.

“우리는 울면 안돼. 이제 시작이야”

바로 선 세월호 안에는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MBC 제공]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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