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환시장은 폭이 얇고 좁아서 투기세력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한국금융연구원이 2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개최한 ‘한미 환율협상과 외환시장 안정 정책의 과제’ 세미나를 열었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의 공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세미나에서는 외환시장 개입이 우리 경제에 수출 감소·자본 유출 등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각계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김정식 교수는 ‘플라자 합의와 아베노믹스의 교훈’이라는 발표를 통해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는 환율 조정 수단이 부족한 우리나라에게는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를 가진 선진국은 통화정책과 외환시장 개입 정책, 두 가지로 환율을 조정할 수 있지만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개입 정책밖에 수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환시 정보 공개까지 이뤄지면 하나밖에 없는 날개마저 접힐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미국이 현재 3~6개월로 설정된 정보 공개 주기를 1일로 줄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미국 피터슨경제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의 적정 원달러 환율을 1,014원으로 제시했다. 미국이 현재 1,080원 수준인 환율을 1,010원대까지 내리기 위해 압박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17일 외환 당국의 외화 매수·매도 등 시장 개입 내역을 내년 3월부터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도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는 “우리 외환당국은 2010년대 시장 영향력이 줄어 원화 강세를 막지 못했고 2012~2016년 전례 없는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다”며 “여기에 환시 개입 공개까지 더해지면 원화 강세와 수출 감소가 심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편 수출과 경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위원장을 지낸 신제윤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우리 외환시장은 전 세계에서 변동성이 가장 커서 국제 투기세력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며 “정부는 필요하면 외환시장에 과감히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외환 당국의 시장 안정화 의지를 지속적으로 시장에 전달하는 한편 해외투자를 활성화해 외화수급조절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일본이 1980년대 플라자 합의의 타격을 극복한 과정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출 증대 후 내수를 부양하고 공공부문보다 기업 투자에서 활로를 찾은 방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