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차병선 기자] 지난 5월 중순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만난 김강남 블루필 대표가 자사가 개발한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블루필은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프로그램 ‘C랩’으로 탄생한 스타트업이다. 독보적 기술력을 앞세워 자립에 성공한 블루필은 일상생활 속에서 유용한 각종 휴대용 스마트 기기를 개발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저마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창업부터 성장, 안착까지 전 과정을 도와주는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 제도를 운영하거나, 실제 자금 지원을 하는 등 다방면으로 스타트업을 돕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존 기업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제도 ‘C랩’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부터 운영된 C랩은 ‘사내벤처 육성제도’다. 삼성전자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업화가 가능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이를 실제 창업으로까지 연결시켜 주는 제도다.
출범 초기부터 C랩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다. 삼성전자의 ‘열린 문화’를 상징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했다. C랩 출신의 성공한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초일류기업을 목표로 하는 삼성전자 출신 창업가들의 기술과 삶에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블루필(Bluefeel)도 그런 관심을 받는 곳 중 한곳이다. 블루필은 이제 막 C랩을 통해 자립에 성공한 스타트업이다. 창업한 지 불과 채 1년도 안됐지만, 벌써부터 차별화된 기술력과 제품이 세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블루필은 ‘실생활을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해주는 스마트 기기 제조회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향점이 조금은 명확하지 않았다. 대다수 스타트업은 특정 기술, 특정 제품 혹은 특정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거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명확한 사업아이템이 없으면 쉽사리 투자를 받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강남 대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해주었다. “사실 애매모호하긴 합니다. 저희도 인정해요. 하지만 ‘스마트 기기 제조’라는 문구보다 ‘실생활’이라는 단어에 좀 더 주목해주셨으면 합니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뭉친 저희 구성원들은 어떤 스타트업보다도 기술력에서 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갖고 있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만들 수 있는 기기라면 뭐든 상관없어요. 하나의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생활을 보다 편안하고 유익하게 해주는 기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블루필은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김강남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엔지니어로서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연구·개발했다. 물론 그가 입사 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여러 분야 기술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저 ‘흥미’와 ‘재미’의 수준이었을 뿐,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꿈을 꾸진 않았다.
그러다 접한 삼성전자의 사내벤처공모 프로그램 ‘C랩’은 김강남 대표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당시를 김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친한 동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해봤어요. 거창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저 ‘네가 지금 당장 가장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됐죠. 당시 저희는 ‘웨어러블’을 주목했어요. 웨어러블 시계, 웨어러블 수트, 웨어러블 안경 등 당시엔 웨어러블이 IT업계를 관통하는 기술 키워드였거든요. 그러다가 미세먼지로 고생하고 있는 주변 지인들이 떠올랐고, 이를 웨어러블로 해결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에 연구를 하기 시작했죠.”
김 대표가 처음 준비했던 건 웨어러블 마스크였다. 미세먼지, 황사를 막아주는 휴대용 제품은 ‘마스크’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스크에 센서를 부착해 미세먼지를 걸러내고, 이를 스마트폰과도 연동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개발 과정이 순탄치 않아 김 대표와 팀원들은 방향을 선회했다. 답답함, 불편함, 일회용 같은 마스크의 단점을 해소할 수 있는 별개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게 바로 ‘휴대용 공기청정기’였다.
당시 김강남 대표는 로봇청소기에 탑재되는 먼지 감지센서와 필터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 센서와 필터를 소형화해 탑재한 휴대용 공기청정기라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강남 대표는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을 투입해 만든 시제품을 들고 나가 지난해 열린 C랩 공모전에서 80대 1 경쟁률을 뚫고 최종 창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블루필을 창업해 어엿한 스타트업으로 새 출발을 했다.
블루필이 개발한 휴대용 미니 선풍기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김 대표는 말한다. “사실 겁도 좀 났습니다. 회사 상사분들은 ‘망하면 다시 돌아오라’고 웃으며 말씀하기도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으니까요. 기왕 나왔으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요. 그래서 제품을 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분 좋은’ 강박관념이 생겼습니다. 제품을 고도화를 조금이라도 더 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상용화가 조금 늦춰지고 있어요.” 현재 블루필은 휴대용 공기청정기 상용화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마무리 작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상반기에는 시장에 제품이 출시될 전망이다.
블루필은 최근 휴대용 선풍기 제품을 선보였다. 휴대용 선풍기 역시 블루필의 기술력이 고스란히 녹아든 제품이다. 휴대용 선풍기는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아이템이다. 1만 원도 채 안 되는 제품을 길거리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블루필이 선보인 휴대용 선풍기는 흔히 볼 수 있는 제품과 어떤 점에서 차별성이 있을까? 기자의 질문을 들은 김강남 대표는 빙긋 미소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많은 차별성을 갖고 있습니다. 휴대성, 배터리 수명, 빠른 충전, 디자인 등 다양한 부분이 다르죠. 그 중에서도 저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성능입니다.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수많은 ‘미투 제품’과 완전히 다른 기술력이 녹아들어 있거든요. 예컨대 가장 센 4단 바람은 일반 선풍기보다 소음이 작고, 바람 세기도 강력합니다. 특허 받은 설계로 안전성도 높였죠. 저희 제품을 이를 모방한 미투 제품이 나올 순 있겠지만, 기술력까진 따라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휴대용 선풍기에 대한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뜨겁다. 현재 블루필의 휴대용 선풍기는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등록돼 자금 조달 목표 금액을 4,400% 초과 달성했다. 5월 17일 기준 누적 펀딩금액만 1억 5,000만 원에 달한다. 김강남 대표는 “지금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펀딩 기간이 끝날 때 2억 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강남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그가 기술력에서만큼은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터뷰가 진행된 한 시간 여 동안, 그의 표정이 가장 밝았던 때는 전문용어를 써가며 블루필이 보유한 기술을 설명할 때였다.
시종일관 김강남 대표와의 인터뷰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창업한 지 1년도 안된 회사 대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에게선 여유가 묻어났다. 주변 상황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갈 길은 간다’는 명확한 사업 철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여유였다. 실제로 김 대표는 ‘내가 곧 소비자’라는 마인드로 사업 전략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마인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반적인 회사에선 보통 ‘시장 조사’라는 것을 합니다. 제품을 시장에 선보였을 때 과연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선택받을 수 있을지 검토하고 출시 여부를 결정하죠. 그런데 저희는 좀 달라요.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분명 수요가 있는 아이템’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뭐 특별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다가 퇴근하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요. 제가 마시는 공기가 다른 사람들의 공기와 다르지 않다면, 미세먼지에 대한 불편함도 똑같이 느낄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 같은 인식을 기반으로 회사를 운영해나갈 생각이에요.”
김강남 대표에게 올해 하반기는 매우 중요하다. 일단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공기청정기 기술 고도화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또 여름 시즌을 앞두고 출시되는 휴대용 선풍기 판매에도 집중할 생각이다. 블루필의 이름으로 시장에 선보이는 사실상 첫 제품인 만큼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물론 틈틈이 후속작도 준비해야 한다. 아직 구체적인 로드맵은 없지만 ‘일상생활 속 니즈’라는 개발 철학에는 변함이 없을 듯하다.
김 대표는 말한다. “저희가 갖고 있는 특허나 기술은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블루필의 기술을 활용해 여러분의 일상생활 속 작은 불편함을 찾아 해결해주는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터이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