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A 3조시대-세금이 줄줄 샌다] '이용률 2%' 몽골 水道에 233억 헛돈...브로커 먹잇감 되기도

■깜깜이 사업선정
원조대상국 요청 없는 사업 발굴
컨설턴트가 기획해 이권 챙기기도
정보공개 안돼 공정·투명성 결여
전문가 부족 타당성분석도 형식적
■엉터리 사후평가
시설 오염됐는데도 "매우 우수"
외부 용역으로 객관성 떨어져

지난 2015년 몽골 야르막 지역에 건립한 수자원시설 집수정 바닥에 쌓인 모래와 흙을 인부들이 제거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총사업비 233억원을 들여 건립했지만 이 시설은 당초 계획한 목표치의 2.7%에 불과한 400가구에 물을 공급하는 데 그쳤다./사진제공=코이카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2013년 캄보디아에 차관을 대여해 종합병원을 건립할 계획을 구상했다. 캄보디아 정부와 사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던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감염병을 줄이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갑작스럽게 발표했다. 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고위급 회의 만찬에서 “우리나라가 예기치 못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유입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감안해 에티오피아·라오스·페루 등 13개국에 1억달러의 재원을 투입해 감염병 대응능력을 강화하도록 지원하겠다”고 계획을 밝힌 것이다. 갑작스러운 정책 발표는 공적개발원조(ODA) 집행기관에 발등의 불로 번졌다. 캄보디아 종합병원 건립계획은 뜬금없이 캄보디아 감염병전문병원 건립으로 둔갑해 캄보디아 정부에 통보됐다. 지역병원 차원에서 감염의료에 대한 인프라를 보유한 캄보디아 정부는 별다른 답신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보건 분야에 차관을 쓸 생각이 전혀 없다”는 반응을 보내기도 했다. 해당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적발한 감사원은 “원조 대상국의 공식 요청도 없는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해 비효율이 발생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은 2011년 총사업비 233억원을 들여 몽골 울란바토르 인근의 야르막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수자원시설 건립 사업을 진행했다. 몽골 정부에서 이 일대 신도시를 건립할 계획이어서 1만5,000명가량의 주민들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코이카는 2014년 6월 용수공급시설 준공식을 마쳤고 국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사원이 현장을 나가보니 몽골에서 인근 지역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지 않아 당초 계획한 목표치의 2.7%에 불과한 400가구에 물을 공급하는 데 그쳤다. 용수공급 시설은 제대로 활용되지 않아 수질이 악화되는가 하면 배수관 막힘 등 온갖 문제점도 나타났다. “오염된 지하수가 혼합된 상태로 유입돼 주민들의 만족도가 낮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ODA 사업은 이처럼 기획부터 설계, 사후관리까지 엉터리로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절차상으로는 원조대상국과 협의를 통해 사업을 발굴하고 사전타당성평가 등을 통해 심사와 승인을 한 뒤 사업이 종료된 후 사후평가까지 실시하도록 했지만 현장을 들여다보면 단계별로 허술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조대상국에 진정한 도움이 되고 ODA 집행비용의 낭비를 줄이려면 단계별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ODA 사업 선정은 과정이 지나치게 불투명하고 공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하는 이른바 ‘쿠킹’의 위험성에도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순실이 기획했다는 ‘미얀마 K타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K팝 등 한류를 앞세워 미얀마에 컨벤션센터와 호텔 등을 건립하려 한 이 사업은 청와대가 밀어붙이고 최순실은 사업에 참여한 업체를 통해 이권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쿠킹은 이른바 ‘컨설턴트’라 불리는 브로커가 ODA사업을 설계한 뒤 공무원과 결탁해 이권을 나눠 먹는 행위를 말한다. ODA 감시 시민단체인 발전대안피다의 한재광 대표는 “사업의 발굴 단계부터 개입하는 일종의 브로커들이 존재한다”며 “이들이 건설 등을 통해 이권을 챙기는 행위가 상당수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정부는 선정과정을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ODA정책 관련 연구원은 “정부의 ODA 사업은 어떤 의사결정으로 정해지는지 외부에 알려진 게 거의 없다”며 “사업선정은 그야말로 ‘블랙박스’라고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원조대상국이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정보 공개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기관의 한 ODA 업무 담당자는 “사업선정은 기본적으로 원조대상국과 협의를 통해 이뤄지며 이 과정에서 원조대상국이 정보공개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사전타당성평가 역시 형식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원조국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하다 보니 국내에 관련 산업 전문가를 통해 타당성을 평가하고 형식적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전타당성평가를 작성하는 전문가들이 국내에 거주하는 해당 산업전문가들이고 원조대상국과는 충분한 교류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2주일 안팎의 현장조사를 통해 해당 지역의 정책적·기술적·산업적 분석을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 역시 “사전타당성평가 보고서를 살펴봤더니 형식적으로 기술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원조국에 대한 밀도 있는 분석을 할 수 있는 ODA 전문가를 빨리 육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이카의 르완다 농촌종합개발사업에 참여한 현지 주민들이 농업 기술을 배우고 있다./사진제공=발전대안피다(옛 ODA 워치)

사업 종료 후 실시하는 사후평가도 문제로 지적된다. 각 지자체와 일부 부처의 경우 ODA 사업을 실시한 후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러다 보니 시민감시단이 사업 종료 후 2~3년 뒤 현장을 방문하면 각종 기자재는 고장 등의 이유로 창고에 들어가 있고 일부 시설은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됐다. 또 사후평가를 비교적 잘 이행하고 있는 수출입은행과 코이카의 경우에도 이들 기관이 직접 사후평가를 외부에 발주하다보니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코이카가 2014년 완공한 몽골 야르막 수자원시설은 이용률도 저조한데다 오염된 지하수가 유입되는 등 실패한 사업이었지만 외부평가 용역을 담당한 업체는 “사업의 적절성과 실현성은 매우 우수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권 연구원은 “현재 구조는 사업평가에 대한 독립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평가를 별도로 하는 조직을 만들어 성과에 따라 예산을 연동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