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걸린 밥상물가] '물가 1%대 안정세'는 착시...신선식품값 40~50% 치솟아

기상악화·수급조절 정책 한계 등에 채소류값 급등
"돈 벌기 점점 힘들어지는데..." 가계 부담 더 커질듯
정부, 알뜰주유소 활성화·가격정보 공개 확대 나서


회사원인 A씨는 주말마다 마트를 찾는다. 장보기 예산은 평균 10만원. 손님이 오는 날을 빼곤 4인 가족의 일주일치 밥상을 위한 기본 비용이다. 그랬던 A씨는 요즘 마트를 갈 때마다 깜짝 놀란다. 5,000원을 밑돌던 신선식품의 가격들이 죄다 올라서다. 40~50%씩 값이 올랐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A씨는 “신선식품이 크게 오르면서 비용이 20%는 더 들어간다”면서 “기상 탓도 있다고 하지만 결국 수급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1일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감자·쌀·고춧가루 등 농수산물 가격이 높게 형성되면서 밥상물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전기·수도·가스 가격 등을 빼면 모두 오른 셈이다.

◇기상악화에 수급조절 실패에 급등하는 밥상물가= 농수산물의 작황·어획량 부진에다가 정부의 농수산물 수급 조절 정책의 영향이 물론 컸다. 기상 악화도 한 몫 했다. 지난해 가뭄·홍수 피해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안 그래도 물량이 부족했는데 한파로 봄 감자 생육마저 부진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정부가 수입 등을 통해 시장에 물량을 더 투입했지만 아직 서민들이 체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감자는 60% 가까이 오른 상태다. 21.8% 오른 오징어도 어획량이 급감하며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29.5%나 오른 쌀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가 쌀 목표가격 인상 정책을 펼치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 고춧가루(43.6%), 무(45.4%), 고구마(31.3%), 배추(30.2%) 등 농산물은 전체적으로 9.0%나 상승하면서 전체 물가를 0.38%포인트 끌어올렸다. 수산물도 4.5% 상승했다. 그나마 달걀(-38.9%), 돼지고기(-9.2%) 등 축산물 가격은 8.1% 떨어져 한숨을 돌렸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심상치 않다. 석유류 가격도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6.0% 오르면서 전체물가를 0.27%포인트 끌어올렸다. 이는 지난해 12월 7.5% 오른 후 최근 5개월 사이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특히 휘발유와 경유가 지난해보다 각각 6.3%, 8.1% 오르면서 강세를 보였다. 김윤성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4월 말부터 국제유가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서 석유류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며 “그에 따른 여파가 다른 품목까지 반영될지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수산물 가격 상승과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외식비도 2.7% 상승하며 서민 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전기·수도·가스 가격은 3.3% 하락하면서 지난해 11월(-6.7%)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특히 도시가스가 8.1% 내렸다. 지난 4월 정부는 물가 관계 차관회의에서 도시철도와 상하수도 등 지방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영향으로 보인다.

◇지갑도 얇아 졌는데…저소득층에 고통의 시간= 최근 경기 상황과 견주었을 때 저소득층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고용 시장도 부진한데 생활 필수품인 식료품들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라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상당한 생활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주부 최미자(61·가명)씨도 “돈 벌기는 점점 힘들어지는 데 쌀, 감자 같은 생필품 가격이 너무 올라 걱정이 크다”며 “마트에 가서 얼마 사지도 않았는데 10만원이 훌쩍 넘는 걸 보면 1.5% 상승했다는 게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것과 다르게 정부는 물가가 안정 추세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비자물가지수가 8개월째 1%대에 머물고 있어 물가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달부터 가격이 높은 무, 감자 등 채소류는 공급을 늘리고 있어 가격이 더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석유류 가격 안정을 위해 알뜰 주유소를 활성화하고 가격정보 공개를 확대하는 등 석유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소득별로 물가 지수를 측정해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평균적인 수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식료품 소비 비중이 큰 서민들이 체감하는 것과 크게 다를 수 있다”며 “소득 계층별로 주로 소비하는 품목을 각각 다른 바스켓에 담아 측정해 공표해야 현실에 맞는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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