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포용적 금융’에 발맞춰 은행들이 중금리 대출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직접 수혜 대상인 중(中)신용자뿐 아니라 고(高)신용자들도 이득을 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금리 대출을 늘린 저축은행들이 예대율을 맞추기 위해 연 3~4% 금리의 예·적금을 대거 내놓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리 상승 전망에 따라 예·적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0.1%포인트의 금리 혜택이라도 더 받기 위해 대거 자금이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1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그동안 쳐다보지 않던 중금리 시장에서 앞다퉈 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신용등급이 낮아 고금리 대출로 밀려났던 서민들이 중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해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포용적 금융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중금리 대출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신용등급 4~6등급 차주(借主)가 연 10%대 안팎의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품을 뜻한다. 일반은행과 제2금융권 사이에 낀 서민들을 위한 대출인 셈이다.
하나은행은 최근 모바일 전용 대출 상품인 ‘KEB하나 편한 대출’을 출시했다. 사회초년생이나 주부 등 금융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신용대출 한도 차감 없이 4~6%대 금리로 대출을 내준다. 이에 앞서 NH농협은행도 연 4~11%대 ‘NH e직장인중금리 대출’을 내놓았고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중금리 대출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중금리 대출은 저축은행이나 개인간거래(P2P) 금융사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금융회사의 여신심사 기법이 더 고도화되면서 중금리 대출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기존 고금리 대출자들은 시중은행의 중금리 상품을 주목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여기에 더해 오는 10월부터 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은 총량규제에서 제외해주기로 했다. 총량규제는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마구잡이로 늘리지 못하도록 매년 전년 대비 일정 수준 범위 안에서 대출 총량을 제한하는 제도다. 저축은행들은 그동안 “중금리 대출을 늘리고 싶어도 총량규제에 막혀 상대적으로 수익이 좋은 고금리 대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해왔다.
이에 따라 주요 저축은행들이 이달부터 잇따라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 가능 총액이 늘어난 데 발맞춰 활발한 영업에 나서기 위해서는 미리 예수금을 늘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2020년부터 저축은행에도 예대율(예수금 대비 대출의 비율)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실제로 저축은행의 고금리 상품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1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이날 현재 저축은행의 정기예금과 적금의 평균 금리(12개월 기준)는 각각 2.51%, 2.64%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고금리 상품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금융권은 예측하고 있다.
SBI저축은행은 최고 연 3.1% 금리를 적용하는 정기예금 상품을 최근 내놓았다. 인터넷뱅킹으로 가입하면 연 0.1%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더케이저축은행도 최고 금리가 연 3.0%인 정기예금 상품 특판에 나섰고 웰컴저축은행도 2년 만기에 연 4.3%까지 금리를 제공하는 정기적금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금리 대출 확대는 중신용자들의 이자 부담을 낮춰주는 한편 예·적금 금리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와 다른 신용등급 구간에 있는 이들도 혜택을 받을 것”이라면서 “금리 상승 전망으로 은행 예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과 맞물려 머니무브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