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회사채가 발행한 지 한 달도 안 돼 디폴트(원금 불이행)에 빠지며 국내 편입 상품들에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상품을 산 투자자뿐만 아니라 인수·판매한 증권사들도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중국발 기업 디폴트 위기가 한국 금융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CERCG의 회사채 부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충분히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었음에도 신용평가사의 안일한 등급 책정, 금융주선사의 어설픈 업무처리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증권사들은 금융주선사인 한화투자증권(003530)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손실에서 겨우 벗어난 한화투자증권이 또 한 번 위기를 맞게 됐다.
“공기업 아니다” 20일만에 A2→C
깜깜이 평가 신평사들 책임 회피
주선사는 담보 등 보호장치 없이
무리한 판매로 소송전 배제 못해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는 “CERCG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으로 인한 증권사의 최종 손실 규모 및 자산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해 신용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신용평가도 “채무조정 여부, 회수 가능성 및 손실인식 규모의 변화, 기관 간 ABCP 매매계약 및 리테일 판매 과정의 책임을 점검해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와 서울신용평가도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
5월 초 한화투자증권의 주도 아래 특수목적회사(SPC)인 금정제십이차는 CERCG의 역외자회사 CERVG오버시즈캐피탈이 발행하고 CERCG가 보증한 1조5,000억달러 규모의 달러화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ABCP를 발행했다. 6개월 만기물과 1년 만기물 총 1,646억원을 만들었다. 금융주선사인 한화투자증권이 1,035억원을, 같은 인수단으로 참여한 이베스트증권은 611억원을 인수했다. 이후 한화증권과 이베스트증권은 셀다운(Sell-down) 방식으로 전량을 기관들에 팔았다. 현대차투자증권(500억원), BNK투자증권(200억원), KB증권(200억원), 유안타증권(150억원), 신영증권(100억원) 등에 팔았고 리테일 시장에서는 부산은행 신탁(200억원), KB증권 리테일(200억원), KTB자산운용(200억원), 골든브릿지자산운용(60억원) 등에서 매입했다.
투자자들은 엉터리 신용평가에 분통을 터뜨렸다. 금정제십이차 발행 당시 나이스신용평가는 ABCP 등급으로 ‘A2’를 부여했다. 이후 20일 만에 ‘C’ 등급으로 재평정했지만 투자자들은 A를 믿었다. 서울신용평가 역시 ‘A2’에서 20일 뒤 C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평사들은 이전에는 CERCG를 지방 공기업으로 분류했으나 교차부도(cross-default)가 발생하며 수정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평사들이 ABCP에 대한 평가를 잘못하고서는 이 책임을 증권사에 고스란히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시상무국이 100% 지분을 가진 부래덕실업이 CERCG 지분 49%를, 중국해외공주그룹유한회사가 지분 27%를 보유해 베이징시 소유 공기업으로 봤던 신평사들은 뒤늦게 CERCG가 국유자산관리위원회(SASAC)에 등록돼 있지 않아 실질적으로 공기업으로 볼 수가 없다며 뒤늦게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편입했던 단기채펀드 잇따라 손실
환매 유도하며 개인까지 피해 우려
한화증권과 이베스트증권의 불완전판매 의혹도 거세게 일고 있다. 공기업으로 분류해 ABCP를 무리하게 판매했을 뿐 아니라 디폴트 발생에 대비한 보호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고 증권사들은 지적한다. 증권사 관계자는 “채무조정·담보설정 등의 방식으로 회수를 시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결국 두 회사는 수수료 이익만 거두고 발을 뺀 셈”이라고 말하며 인수단을 대상으로 소송을 검토 중이다. 이례적으로 증권사 간 대규모 소송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개인들이다. ABCP에 투자한 공모펀드는 KTB자산운용의 ‘KTB전단채’와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의 ‘골든브릿지으뜸단기’ ‘골든브릿지스마트단기채’ 3종이다. 규모가 가장 큰 ‘KTB전단채’ 펀드에는 1,444억원이 유입됐고 ‘골든브릿지으뜸단기’ ‘골든브릿지스마트단기채’ 역시 설정액이 84억원, 441억원 늘었다. 해당 ABCP를 200억원(전체 5% 규모) 담고 있는 KTB전단채 펀드는 일주일간 3.85%의 손실을 냈다. 운용사 측은 디폴트 채권의 원금 80%를 상각한 후 환매기한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환매를 유도해 책임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박시진·서지혜기자 see120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