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Who]일본 잡던 '미사일맨' 美 통상전쟁 최전선에 서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美무역대표부 대표
작년 윌버 로스 상무장관 밀어내고
트럼프 행정부 통상강경파 중심에
레이건때부터 美 제조업 보호 앞장
35년 통상 노하우·거친협상 스타일
전문성까지 두루 갖춰 트럼프 신뢰
철강·알루미늄 고율관세도 진두지휘
비판여론엔 "협상장에 서보라" 일축


“중국이 그동안 우리를 활용하고 있었던 게 아닙니까?”

지난해 8월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루스벨트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어조는 단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선임고문, 각 부처 장관들을 앞에 두고 그는 대중 무역적자 확대 추이를 나타내는 도표를 꺼내 중국의 불공정무역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대사가 “중국과 쌓아올린 신뢰에 의지해 다시 협의하자”고 주장했지만 이 제안은 묵살됐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8월14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를 조사하라고 라이트하이저 대표에게 지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루스벨트룸의 바로 그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통상 강경 노선이 결정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의 최전선에 설 장수가 윌버 로스 상무장관에서 라이트하이저 대표로 바뀐 순간이다.

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3차 미중 무역협상을 앞두고 미국이 돌연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25%의 고율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자 미 외신들은 이 같은 결정의 배후로 일제히 라이트하이저 대표를 지목했다. 상대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상호 보류하기로 했던 2차 무역협상 후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휴전 선언’을 하자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곧장 “중국의 시장개방은 좋지만 기술 이전 강요나 사이버 공격 등의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며 정면 비판했기 때문이다. ‘통상 유화파’를 이끄는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맞선 상황은 그가 트럼프 행정부에 다수 포진한 ‘통상 강경파’ 중에서도 중심에 선 인물임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지인들은 그가 유년 시절 ‘미국 제조업의 몰락’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유무역에 반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1947년 오하이오주 북동부의 항구도시 애슈터뷸라에서 나고 자랐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미국산 철강의 수출 항구로 번성했던 애슈터뷸라는 20세기 자유무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철강 기계는 멈췄고 공장은 폐쇄됐으며 기업은 해외로 떠났다. 부친이 의사였던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미국에서도 등록금이 비싸기로 유명한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자신을 ‘블루칼라’로 묘사한다. 미국 제조업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긴 셈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보호무역주의의 전사’로 명성을 얻은 시기는 1983년부터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USTR 부대표를 지내면서다. 당시 미국 산업을 위협하는 일본을 겨냥해 라이트하이저 당시 부대표는 불공정 무역에 대한 보복조치를 정당화하는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일본산 철강·자동차 등 각종 물품에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일본은 대미 수출물량에 대한 자율 규제에 나섰다. 징벌적 관세를 물리면 상대국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수출을 자제하고 이는 미국의 제조업을 되살린다는 통상 노하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지금도 대일 무역적자 해소를 요구하는 그를 두고 일본 언론들은 35년 전의 ‘악연’을 떠올리고는 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당시 라이트하이저 부대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본 측 협상안 문건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려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미사일 맨’이다. 욕설과 협박에도 능했다고 한다. 당시 미일 철강 협상에 참가했던 한 관계자는 “상대가 말을 들을 때까지 비난했다”며 “이렇게 엄격하고 확실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후 1985년 부대표에서 물러난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통상 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미국 기업의 대변자’로 한 우물을 파왔다.

중국과의 통상 전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성과 함께 거친 협상 기술을 발휘하는 라이트하이저 대표를 통상 정책의 핵심 보좌관으로 매우 신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7월 로스 장관이 중국과의 통상 합의안을 보고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정권의 재탕이 아니냐”고 화를 냈으며 이후 더욱 강경한 대응을 주장한 라이트하이저 대표에게 무게추가 기울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이후 미국 정부는 중국의 지재권 침해 조사, 세탁기·태양광 패널 세이프가드, 500억달러(약 5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관세 부과안을 차례차례 꺼냈다.

WSJ는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고율 관세 부과 등 글로벌 무역전쟁을 촉발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도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작품이라고 전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차별 없는 일괄적 관세 부과를 주장했지만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예외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외 대상이 된 국가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쿼터제 등 다른 수출 규제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협상 기술을 여기서도 편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예상은 상당 부분 적중했다. 철강 수출 규모를 10% 줄이라는 미국의 요구를 끝내 거부한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멕시코 등에 대해서는 고율 관세 부과라는 ‘철퇴’가 가해졌다.

미 정치권에서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자 그는 “청중은 한 명(트럼프 대통령)이면 충분하다”며 충성심을 드러냈다. 다만 청중 한 명만 믿고 독불장군식 협상을 이어가는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사방에 적만 가득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는 상황에서 보복의 엄두도 낼 수 없던 30년 전 일본과 달리 미국과 세계 패권을 경쟁하고 있는 중국은 꺼낼 몽둥이가 많다. NYT는 보호무역주의 조치로 철강 등 일부 제조업은 이득을 보겠지만 보복 관세의 대상이 될 농축산업계는 강하게 반발할 것이며 악화한 여론은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의 반발까지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1월 “민주당 의원, 주류 공화당 의원이 협상장에 서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장에서 싸우지 않는 자, 말도 하지 말라’는 엄포인 셈이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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