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 거래’ 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간섭하거나 특정 성향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조치는 결단코 하지 않았다”며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을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신성한 대법원 재판을 폄하하는 것은 모욕”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현재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이미 해당 의혹을 기정사실화하고 형사조치까지 검토하는 점을 감안하면 전·현직 대법원장 간 충돌을 둘러싼 법원 내 내홍이 더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1일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두 가지는 명백히 선을 긋고 넘어가겠다”며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하거나 상고법원 추진에 반대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준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법원의 내홍으로 비칠까 염려돼서 언급을 피해 왔다”며 “대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며 이를 함부로 폄하하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 역설했다. 또 “법원행정처가 뭔가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이라며 나머지 책임은 법원행정처로 떠넘겼다.
그는 특히 청와대와 교감을 이뤄 재판을 거래했다는 비판에 대해 “여러 컴퓨터를 남의 일기장 보듯 뒤지면서 조사를 세 번이나 했는데 사안을 못 밝혔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청와대 제출용 사법부의 현안 자료는 일회성으로 작성된 것이며 본인은 수많은 보고 속에 다 기억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다만 검찰 수사가 시작될 경우 향후 대응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보자”며 답을 미뤘다.
한동안 잠적했던 양 전 대법원장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반격에 나선 것은 전날 김 대법원장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그에 대한 의혹을 사실상 기정사실화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 완전 분리 등 특단의 대책을 꺼내 들며 “법원 재판에 누구도 부정한 방법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믿음을 얻지 못하면 사법부는 더 이상 존립의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양승태 사법부 시절 재판 개입 가능성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도 양 전 대법원장 기자회견 직후 전국 법관들에게 e메일을 발송,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수많은 법관이 헌신하며 지켜온 자긍심과 국민들이 사법부에 보내준 신뢰가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며 자신의 결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주장했다.
그는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사찰과 통제의 대상이 됐던 법관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각 법원의 판사회의와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을 통해 지혜와 의지를 모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일선 판사들의 지지를 독려했다.
/윤경환·조권형기자 ykh22@sedaily.com